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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볼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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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볼링공

입력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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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천장에 볼링공이 있었다.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볼링공이 내려와 내 배에 명중했다. 아프고 놀라 침대에서 기어 나와 문제의 볼링공을 찾았다. 불을 켜고 아무리 침대 주변을 살펴봐도 볼링공은 없었다. 배는 뻐개지게 아프고 공은 없고, 황당하고 무서운 마음에 우두커니 침대 근처 의자에 앉아있었다. 환한 방에서 차분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악몽이었다. 그런데 배는 왜 여전히 아픈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침대로 다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데 그놈의 볼링공이 다시 보인다. 이번에는 볼링공이 떨어지기 전에 후다닥 침대 밖으로 몸을 피했다. 베개가 떨어지고 이불이 다리에 감기고,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난리도 아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얼굴은 푸석푸석. 그 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렇다고 볼링공이 보이는데 안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여전히 가슴은 뻐근하다. 그러고는 새벽까지 불면이다. 비현실의 고통도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때가 있는데, 현실의 고통이야 말해 무엇하랴. 모진 비바람에 집과 터전을 잃고 밤잠을 설치는 분들에게 뒤늦게나마, 겸연쩍은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 부디 건강들 하시라. 악몽의 밤은 길지 않으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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