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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1> 서울 추탕의 명가 용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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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1> 서울 추탕의 명가 용금옥

입력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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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은 꺼질 줄 모르는 생명력에서 나온다. 그 생명력은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소통에 달려 있다. 어느 쪽이든 그런 자세가 부족할 경우 그 문화는 단명에 그친다. 노포(老쉦), 대를 이어 가는 가게도 마찬가지다. 노포는 생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한국에는 창업 한 세기의 전통을 간직한 노포가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최소 100년의 역사를 지닌 점포나 회사를 '시니세' 라고 부른다. 한자로 우리와 똑 같이 표기하는데 전국에 걸쳐 1만5,200 여개에 달한다. 일본의 긍지와 저력이다. 개발의 논리와 직업에 대한 유교적 가치관에 밀려 사라져가는 우리의 노포를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대상은 창업 50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가구와 골동품을 가르는 기준을 원용했다. /편집자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고향 집처럼. 그래서 반갑다. 서울식 추탕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용금옥(湧金屋)은 그런 집이다. 오죽하면 한 세대 전 남북조절위 제3차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의 박성철 대표까지 용금옥 예찬대열에 합류했을까. "지금도 무교동 그 자리에 있는 가요?"

곱창과 양을 푹 곤 육수에 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인다. 전라도 부안이나 정읍에서 올라오는 토종 미꾸라지만을 엄선해서 쓴다. 미꾸라지를 넣기 전에 느타리·모기·표고버섯과 두부 양파 유부 등 갖은 양념이 먼저 육수에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듬뿍 쳐 내놓는 시뻘건 추탕은 보기만 해도 입안이 알싸해진다. 이 집 추탕의 특미다. 혀에서 불이 나고 머리가 저릴 정도다. 매운 맛은 미각이 아니다. 통각이다. 혀에 대한 고문이 아무리 심해도 그 맛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다. 용금옥 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

용금옥은 지난해 고희를 맞았다. 그나마 몇 안 남은 서울의 노포중 하나다. 홍기녀 할머니의 체취가 그대로 살아 있는 용금옥의 전통은 손자 신동민(43)씨와 큰형수 오경식(43)씨가 이어가고 있다. "할머님 생전의 손 맛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 그런 분위기를 잊지 못하는 분들이 자주 찾아주십니다. '맛 있게 잘 먹었네' 라는 한 마디에 보람을 느낍니다." 4형제 중 셋째인 그는 대림엔지니어링의 자금과장을 끝으로 퇴사하고 97년 9월 용금옥 운영에 나섰다. 신씨의 어머니(조인옥)는 할머니의 맏며느리로 한동안 주방을 책임졌다.

신씨가 신입사원 시절의 삽화다. 직속상사 책상 위에 용금옥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까닭을 물었다. "회장님(대림그룹 창업주 이재준)이 용금옥 추탕을 좋아하셔서 가끔 양동이로 배달시켜 임원들과 함께 드시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 집인데요" 하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더란다.

"제가 운영을 맡은 뒤 모르는 분들이 찾아와 분점을 내자고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거절했습니다. 제 맛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할머니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작은어머니가 부근에 분점을 냈다. 용금옥의 맛은 이제 환갑을 넘긴 윤재순씨의 손에서 나온다. 82년 세상을 떠난 홍기녀 할머니는 50년 가까이 곁을 지켜온 그를 딸처럼 여겼다. 큰형수는 윤 할머니에게 전래의 비법을 익히고 있다.

용금옥에선 손님은 한 식구나 다름없다. 음식에 정성이 깃들어 있다.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먹는 사람의 기쁨이 어울려야 음식은 산다. 정성이 없는 먹거리는 죽은 음식이다. 요리한 사람의 짜증과 미움만 담겨 있을 뿐이다.

중구 다동 165-1, 용금옥의 주소다. 일제강점기인 32년 현재의 무교동 코오롱빌딩 자리에서 처음 문을 연 용금옥은 5·16 직후 다동의 납작한 한옥으로 옮겨갔다. 그 때 이후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건평 25평, 40명이 한번에 앉으면 움직일 틈도 없다.

신씨의 할아버지(신석숭)는 술 좋아하고 활 잘 쏘던 한량이었다. 가세가 기울자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추탕집을 시작한 것이다. 정작 추탕을 끓이고 손님을 내 식구처럼 먹인 사람은 부인(홍기녀)이었다. 어떤 재료든 주물럭거리기만 하면 맛이 저절로 우러나올 정도로 손 맛이 기가 막혔다.

용금옥은 서울의 사랑방이었다. 켜켜이 쌓인 연륜만큼이나 비화도 풍성하다. 변영로 정지용 오상순 김팔봉 박종화 구상(문인) 조병옥 유진오(정치인) 김용환 김병기(화가) 임원식(지휘자) 박진 여석기 김정옥(연극인) 이관구 홍종인 선우휘(언론인) 등 용금옥과 인연을 나눈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60년대까지 내로라 하는 사람치고 이 집에 드나들지 않은 이들은 명사대열에 끼지 못했다. 자유당 말기 야당의 대통령후보 조병옥 박사는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여기서 추탕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그렇게 식성이 좋으면서 무슨 병이 있다고 미국 가세요. " 이렇게 말한 홍 할머니는 조 박사가 미국에서 서거하자 가게 문을 닫아 걸고 남편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원로시인 이용상(79)옹은 꼭 10년 전 '용금옥시대'라는 책을 썼다. 일제말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그는 광복을 맞아 친구 김영주(북한의 김일성 동생)와 서울로 왔고 형을 만난 곳이 용금옥이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사관의 심정으로 근현대사의 이면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는 못다한 이야기를 모아 후속편을 준비하고 있다.

"용금옥은 이 자리에 있을 겁니다. 저 뿐만 아니라 두 형과 동생의 자녀중 원하는 사람에게 대물림을 하기로 형제들끼리 결정했습니다." 신씨의 확신에 찬 다짐이다. 노포는 엄연한 우리말이다. 그런데도 생소하고 어색하다. 그 말에 걸맞은 대상이 드문 탓일 것이다. 노포와 오래된 가게, 같은 뜻이지만 느낌의 무게는 다르다. 노포에는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견뎌온 깊은 맛이 배어 있다. 그런 멋이 용금옥에선 느껴지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금옥이 제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까닭일 것이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 서울式 추탕

추탕은 추어탕의 서울말이다. 남쪽의 경상도나 전라도의 추어탕과는 요리법이 다르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삶아서 갈지만 추탕은 산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인다. 추탕은 청계천에서 태어난 서울의 토속음식이다. 그러니 한창 진행중인 청계천 복원작업을 지켜보는 노인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조선시대 청계천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살았다. 다리마다 우두머리가 있어 '꼭지'로 불렸다. 가장 힘센 주먹이 지금 서울운동장 부근의 조산(造山)에 터를 잡고 있었는데 그를 따로 일컬어 '꼭지딴'이라고 했다. 조산은 매년 청계천을 준설할 때 나온 모래를 쌓아놓은 동산으로 가산(假山)이라고도 한다.

꼭지들은 관에서 때때로 부여 받은 특별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내의원이나 전의감, 혜민서 같은 의료기관에 약재로 쓰이는 뱀 두더지 지네 두꺼비 개구리 따위를 잡아 바친 것이다. 약재를 구하라는 영을 받은 포도청은 그 임무를 꼭지들에게 맡겼다. 포도청은 대신 추탕을 끓여 팔 권리를 주었다. 그래서 추탕은 꼭지탕으로도 불렸다.

미꾸라지는 논두렁이나 저수지 등 잡기 쉬운 내수면에 서식하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중요한 먹거리였다.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시대 즐겨먹던 어류 9종에 미꾸라지가 포함됐을 정도다. 추탕의 유래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조선시대 '추두부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말부터 꼭지들이 광통교 수표교 등 청계천 다리 밑에 가마솥을 걸고 얼큰하게 끓여 팔던 추탕은 차츰 서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며 별미로 자리 잡는다. 추탕집은 대개 포도청에서 물러난 포졸들이 뒷돈을 댔다고 한다. 미꾸라지는 7∼11월이 제철이어서 가장 살찌고 맛이 좋다. 가을은 그래서 추탕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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