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시민단체들이 신당 창당 등을 포함한 본격적인 '정치세력화' 논의에 나서면서 '시민단체의 정치참여' 문제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지난 8일 시민단체 소속 활동가와 각계 인사 1,013명은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촉구하는 1,000인 공동선언'을 발표, "시민사회로부터 새로운 정치주체가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경숙 여성단체연합 대표, 이학영 YMCA연맹 대표, 정대화 상지대 교수 등 대표 15명으로 구성된 기획단은 10월6일부터 각 지역을 순회하며 지지 및 당선운동과 시민정당 발족 여부 등 정치세력화의 '구체적인 방식'을 놓고 본격적인 여론 수렴에 나설 예정이다.
시민단체의 이 같은 '정치세력화' 논의는 지난 4월부터 정치개혁시민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여야의 개혁성향 의원들과 함께 '정치개혁범국민협의회'의 틀 안에서 진행해온 정치개혁 논의가 무산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최열 대표는 "기본적인 정치개혁법안 제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정치권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특히 새만금 문제나 호주제 폐지 등 각종 현안 문제에서 늘 좌절해왔던 환경·여성단체들은 '세력화'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와 같은 90년대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은 '1000인선언'에 불참하고 총선에 대비해 순수한 의미의 '정치개혁운동'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환경련, 여성단체 등 대다수의 시민단체들이 독자적인 세력화를 추진할 경우 경실련, 참여연대 등 '권력감시단체'들이 소수 인력만으로 2000년처럼 전국적인 낙선운동을 추진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어서 총선을 둘러싼 시민단체의 이합집산이 주목되고 있다.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시민단체의 비영리성과 비당파성은 국민 신뢰와 사회적 설득력의 기반이 되어 왔다"며 "이 같은 원칙을 폐기하고 세력화를 시도한다면 시민운동에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정치세력화 논의 자체는 가능하지만 권력감시단체는 정치참여에 신중해야 한다"며 "이번 총선에서 참여연대는 '정치개혁운동'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실장은 "현재 2000년과 같은 대규모의 낙선운동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는 1991년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가 결성돼 30년만에 부활한 광역·기초의회에서 불법·탈법 선거운동에 대한 감시고발을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95년, 98년 지방선거에서는 각각 환경후보 31명과 21명이 출마해 당선됐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참여연대와 환경련, 녹색연합 등 전국 460여개 단체가 참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여 낙선대상자 86명 중 59명(68.6%)이 선거에서 떨어졌다.
현재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은 정보공개운동을 통한 '우리 지역 정치인 바로알기 운동'을 벌이고 있고 정대화 교수 등 지역 활동가 중심의 '시민정치네트워크'(가칭)는 '지지 당선운동'을 포함해 소속 단체 회원들의 직접 출마까지 고려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재 '1000인 선언' 기획단에도 참여하고 있는 정 교수는 "실질적인 정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던 낙선운동에 대한 평가를 계기로 이번에는 보다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며 "정보공개 운동으로는 영호남의 강고한 지역주의를 청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지 당선 운동 이상의 정치 주체형성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단체들이 이미 '비제도권'의 정치세력임을 감안할 때 중립성을 이유로 무리한 '비정치'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며 "낙선운동의 경험과 젊은 유권자층의 등장이라는 사회 제반 조건에서 시민단체들이 전문성과 정책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적 의제 설정을 할 수 있다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 정치참여 성공할까
지난 8일 시민단체 대표 등 각계 인사 1,013명이 "더 이상 기성 정치인의 들러리는 되지 않겠다"며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갖추면서 과연 이들의 새로운 정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민들의 변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온 기존 정치인들의 대안 세력이 출현했다"며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을 깨고 정치판에 뛰어든 사실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일반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성공적인 정착의 관건이라고 꼬집었다.
숭실대 강원택(정외과) 교수는 "'너희들도 결국 정치하는구나' '시민운동가가 정치에 참여하는 순간 더 이상 시민단체가 아니다' 등과 같은 정치적 냉소주의가 엄존하지만, 국민들의 높아진 정치 변화 욕구에 반비례해 기존 정치권은 퇴행하는 모습만 보여 왔기 때문에 환경 자체는 나쁘지 않은 상태"라며 "기존 정치권과 똑 같은 구태를 보이지만 않는다면 착실히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공회대 NGO대학원 조효제 교수도 "과거에는 시민단체가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기존 정당에 수혈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독자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내세우고자 하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며 "이들의 실험이 성공하려면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단체와의 갈등 봉합도 성공의 중요한 변수로 거론됐다.
조 교수는 "시민단체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정치세력화에 반대하고 전문적인 영역을 개척하는 시민단체도 여전히 엄존한다"며 "앞으로 총선과 관련된 민감한 시점에서 다른 시민단체의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 獨 녹색당 사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의 정당정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지 못한 채 권력 획득에만 몰두함으로써 '정당정치의 빈곤'을 초래했다. 기존의 정당정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신사회운동 세력들은 외부에서 정치사회에 압박을 가하는 '영향의 정치'에 한계를 느끼게 됐고, 이는 곧 비제도적 정치와 기존 정당들의 가치 전복을 추구하는 '반(反) 정당적 정당'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의사당 밖에서' 전개하던 시민운동은 '의사당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했고, 그 결과 권력 확보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 변화를 추구하는 녹색당이 등장했다. 1972년 스위스에서 처음 등장한 녹색당은 이후 영국,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속속 창당돼 현재 서유럽은 물론 전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녹생당의 대두는 기성 정당체제에 익숙해진 산업사회의 가치와 방식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1980년 독일 녹색당이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채택한 4대 원칙은 '생태주의,비폭력,사회적 책임,풀뿌리 민주주의'로, 이들이 내세운 반권위주의, 반위계주의, 남녀평등주의, 참여민주주의, 정당민주화 등은 기존 정당의 일반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기성 정당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움은 유권자들로부터 실제 정치 역량 이상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새 정당체제는 다양한 운동 부문과 좌우파를 망라하는 무지개식 연합으로 끊임없는 내부분란과 이합집산을 거듭해야 했다. 수십 년간의 의회 활동을 거친 녹색당은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오늘날 기회가 되면 권력을 맡아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현실주의'로 선회했다. 대표 주자격인 독일 녹색당은 1983년 총선에서 5.6%의 득표를 차지함으로써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한데 이어 1989년 에는 적녹연합을 통해 연립정부 파트너로 집권세력이 됐다. 1998년 녹색당 출신으로 독일 외무장관에 오른 요시카 피셔의 등장은 60년대 학생·반전 운동이 신사회운동과 녹색당을 거쳐 제도정치로 변화해온 20세기 후반 서구 신사회운동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