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즐겁고 상쾌한 영화다. 서른 살 처녀 툴라가 주인공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조용히 '대박'을 터뜨린 화제작이다. 살아온 내력이 다른 청교도 청년과 뒤늦게 사랑에 빠진 툴라는 상대의 민족 문제, 엄청나게 다른 가풍, 비용 등으로 고민한다. 어머니가 딸을 안심시킨다."우리 그리스는 역사적으로 터키와 독일 등의 침략을 받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다. 네 아버지와 나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너희를 키우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 왔다. 그런 우리가 아들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무엇을 못 해주겠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민 이유가 우리와 같다. 예전 우리도 외세에 시달리는 조국을 떠나, 자녀만은 잘 키워 보려고 이민 길에 올랐다. 근래 다시 이민 희망자가 부쩍 는다고 한다. 희망자는 절반 가량이 30대이고, 열악한 자녀 교육환경과 취업난이 주원인으로 보도되고 있다. 교육환경과 취업난 때문에 조국에 절망하는 이가 많다는 것은 불길한 경고다. 국가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위험한 신호다.
하지만 조국을 떠나도록 충동질하는 의식의 심연에는 더 큰 불안이 있다. 남북분단과 높은 전쟁 개연성이 자아내는 불안이다. 우리 민족은 그리스인처럼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려 왔고, 그 연장선 상에서 지금도 전쟁의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다. 조선 말기에 시작된 우리의 이민은 일제 때 본격화했고, 분단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212만) 중국(188만) 일본(64만) 러시아(52만) 등에 565만 명이 흩어져 산다. '동포 부국'이다.
6·25 포성 속에 태어난 나는 한번도 전쟁 재발의 불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민을 희망하는 것은 숙명 같은 전쟁불안에서 탈출하고 싶은 까닭이다. 경제불황과 함께 '악의 축' 발언, 북핵 등으로 한반도가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통일을 이루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민족의 숙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인간적으로 승화시키고, 모국을 등지려는 이도 만류하는 길이다.
물론 그래도 이민 희망자는 있다. 젊은이에게는 현실초월 욕구가 강하다. 현실초월 욕구와 맞물려 탈조국을 추부기는 또 다른 요인이 인구과밀이다. 과도한 경쟁과 사회적 긴장이 미래 전망을 앗아가고 있다. 우리 인구는 너무 많고, 국토는 너무 좁다. 인구밀도에서 한국(476)은 중국(133), 일본(336)보다도 훨씬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그리고 월등하게 높다.
과밀한 인구는 인성과 민족성을 악화시킨다. 한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나 그리피스의 저서처럼 '은둔의 나라'가 아니다.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나라로 바뀌었다. 예전에 자랑스럽던 교육열은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변질됐고, 노사관계와 정치판은 사철 전투상황을 방불케 한다. 젊은이들은 복작거리는 고국을 떠나 인구 희소국에서의 신생을 꿈꾸고 있다. 이민 선호국을 보면 자명하다. 미국(인구밀도 29) 캐나다(3) 뉴질랜드(14) 호주(2) 등을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출산율이 1.17로 줄었다고 야단이다. 출산 장려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구는 아직도 많다. 오히려 지금이 적정인구를 유지하는 보다 이상적인 나라를 가꿀 적기라고 믿는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는 정년연장으로 풀어가야 한다. 영국에서는 70세까지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고액임금 문제는 일정한 연령 뒤에는 임금은 줄여 가는 '임금 피크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민문제는 인구과밀, 남북분단, 일상적 불만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제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지 않는 한, 고국을 등지는 이민 행렬은 줄지 않는다.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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