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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유학시대]<16>호주·뉴질랜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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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유학시대]<16>호주·뉴질랜드 (상)

입력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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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8학군 고교를 졸업한 A(19)군. 명문대 출신 부모의 이상 교육열 탓에 A군은 고 2때부터 성적 노이로제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에 의존해야 했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 미국이나 영국 유학이 버거울 것이라고 여겼던 부모는 2년 전 A군에게 호주 유학을 권했다. 사실상 도피성 유학이었지만 A군은 한국보다 자유로운 학습분위기에 의외로 빨리 적응, 현재는 시드니 대학에 다니고 있다.시드니 시내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 광장. 호주에서 한국 유학생을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곳은 한편으로는 호주 한국 유학생들에겐 '탈선의 장소'이기도 하다. 부모들에 떠밀려 억지로 유학을 온 대다수 학생들은 학교수업의 20%이상을 결석, 제적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해에도 6,200명 이상의 외국 유학생이 호주정부로부터 추방됐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부끄럽게도 한국 유학생이다.

교육환경에 적응해야 성공

호주나 뉴질랜드의 한국 유학생은 현재 약 2만7,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이 미국이나 유럽대신 남반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국, 영국, 캐나다보다 훨씬 저렴한 돈을 들이고도 영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

K대 토목학과 재학 중이던 올해 초 호주 유학을 온 김창모(25)씨가 대표적인 경우. 김씨는 "국내에서 취직하려면 영어성적이 필수인데 6개월 어학연수에 1,000만원 이상 드는 미국이나 영국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호주 억양이 섞여있는지는 몰라도 영어 콤플렉스를 벗어 던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를 휴학하고, 지난 6월부터 스트라스필드 광장 근처 랭귀지스쿨에 다니고 있는 K(12)군은 그 반대의 경우다. "부산에 계시는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미국이나 호주 선생님에게 직접 영어를 배우니 영어공부에 흥미를 느낀다."

호주나 뉴질랜드가 정부차원에서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영어성적 등 규제를 완화시킨 것도 한국 유학생 증가에 한몫 했다. 현지 한국 유학생들의 국내 학교성적도 최상위권보다는 중하위권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지 유학원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성적이 나빴다고 해서 반드시 유학생활의 실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다른 현지 교육환경에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클랜드대 건축학과에 다니고 있는 이성화(20·건축학)씨가 대표적인 경우. 부산 K중을 중퇴, 1996년 뉴질랜드로 건너온 그는 "한국에서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건축학이라는 적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창의력을 중시하는 뉴질랜드 고교 시절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 인생의 목표가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2001년 2월 시드니로 건너온 남현수(18·여)양은 "한국처럼 선생님이 성적이 나쁘다고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일이 없었다"면서 "영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방식에 마음에 들어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97년 2월부터 호주와 뉴질랜드를 오가면서 유학을 한 최지연(20·전문대 유아교육전공)씨도 "준비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개방적인 교육환경에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기회만큼 탈선의 유혹도 커

거꾸로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들의 강압에 의해 도피성 유학을 온 유학생들은 탈선하는 경우가 많다. 현지 유학생 중 일부는 카지노에서 거액을 날려 현지 동포사회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마약이나 술 등에 빠져 동포사회의 근심거리가 되기도 한다. 오클랜드 한인회 관계자는 "중국 유학생 경우 현지 경찰에서 '전담반'을 편성할 정도로 탈선이 고착화됐다"면서 "아직 한국 유학생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유학생의 탈선은 동포사회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탈선의 또 다른 원인 중에는 조기유학생 등 부모들의 강압에 의한 유학이 유달리 많은 것도 하나다. 시드니 한인 카운셀링 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연령대는 83.3%가 부모의 뜻에 따라 유학을 오는 것으로 밝혀진 반면, 대학생의 경우 95%가 본인 의사에 따라 유학을 왔다. 영남대를 다니다 2년전 오클랜드대로 유학을 간 배진명(23·여)씨는 "영국이나 미국만큼 까다롭지는 않겠지만 뉴질랜드나 호주유학도 영어실력과 학업에 대한 열정이 필수"라며 "유학생의 70∼80%가 실패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시드니(호주)·오클랜드(뉴질랜드)=정원수기자 noblelair@hk.co.kr

● 시드니서 하숙집 조혜옥씨

"유학 생활이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으려면, 목표의식을 확실하게 갖고 와야 합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10년 넘게 하숙집을 운영하며 현지 유학생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조혜옥(47·사진)씨가 호주 유학을 바라는 학생들에게 던지는 첫번째 충고다. 총신대 졸업 후 목회활동을 하던 그는 1990년 6월 호주 유학 중이던 남편 김충석(47) 목사를 따라 호주에 입국했다. 이후 호주 유학생들의 하숙집 아줌마, 18세 미만 유학생들의 후견인 역할까지 맡으면서 호주 유학의 장단점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게 됐다. 지난 4월에는 유학 길라잡이 책자인 '호주 하숙집 아줌마의 유학 리포트'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조씨는 호주나 뉴질랜드 유학의 비용이 싸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유학을 보내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1년 기본 경비가 학비만 1만5,000호주달러, 하숙비 1만2,000호주달러 등 용돈 등을 합치면 4만 호주달러가 들어간다"며 "호주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우리 돈으로 매년 2,800만원정도가 필요할 정도"고 설명했다. 특히 영어실력이 떨어져 현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 일부 유학생들은 과외까지 받기 때문에 한국보다 더 많은 사교육비가 들어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호주유학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유학생들 중에는 부모에게 떠밀려 유학을 와서 탈선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호주 유학이 영국이나 미국 유학에 비해 절대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호주에서 인정 받으면 영국이나 미국 명문대로 진학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그가 추천하는 성공적인 호주 유학을 위한 조건은 의외로 간단하다. 목적 의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영어 공부만 하려는 생각이라면 부모들이 배려하는 조기유학이 유리하다. 반면 영어 뿐만 아니라 호주 교육을 받으면서 전문성까지 쌓고 싶다면 중 2,3년 쯤에 오는 게 바람직하다." 그는 "호주 유학생들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부모 없이 다른 나라에서 사춘기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부모들이 자녀들의 국제미아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드니=정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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