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가 컸다. 미국의 동부지역도 토네이도를 동반한 허리케인 이사벨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은 과학적인 예측과 대비로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간 우리는 숨가쁘게 근·현대를 헤쳐오느라 '기본'을 소홀히 해왔다. 그러다 보니 기상 이변에 대한 대책도 미흡해 피해를 크게 입는 것 같다.최근에 독일을 다녀온 친구가 베를린의 구 시가지 뿐 아니라 신 시가지에 세워진 건물들의 아름다움과 튼튼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우리의 건축물은 얼마나 '날림'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그는 남들이 몇 백년에 걸쳐서 이룬 것을 단 40여 년 만에 해 치우느라 허겁지겁 달려온 우리 사회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외형적 성과 이면의 부실함에 가슴이 저미더라는 감상을 전해왔다.
올해도 우리는 바쁘게 복구를 할 것이다. 하늘을 가릴 지붕이라도 우선 마련하는 것이 급하다.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그렇지만 좀 더 철저히 예측하고 대비했다면 피해를 줄이지 않았을까. 태풍 피해를 줄이자면 자연 현상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하며 한반도에 국한한 측정 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그 변화를 관찰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일본, 인도, 중국이 갖고 있는 기상위성을 우리도 갖춰 보다 정밀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국제적 기상 협력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자연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원이 한정돼 있는 우리는 장기 투자에 인색할 수 밖에 없다. 당장 거처가 없는 사람을 위한 집을 짓는 건축가에게 튼튼하게 집을 지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계속 이런 방식을 지속한다면 우리에겐 진정으로 행복한 미래가 올 수 있을까.
이제는 자원 배분에 대해 다시 한번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간 숨가쁘게 살아오느라 힘들었지만 이젠 좀 더 긴 안목으로 국가 예산, 사회적 자산, 인적 자산의 합리적 배분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 과학에 지금보다 더 투자하지 않는다면, 예측은 더욱 어려워지고 자연현상에 매번 굴복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과학이 당장 돈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진 않는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자연과학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집행되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이 상 경 (주)메트릭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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