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왜 한국 대작 영화의 영웅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내성적인가. 민병천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내츄럴 시티'를 보면서도 자연스레 의문 부호가 떠오른다. 좋다. 이 영화도 흥행과 예술을 동시에 추구하려 한 모양이다. 행동하는 영웅보다는 고뇌하는 영웅이 더 멋지다. 다 좋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야기는 진척이 되지 않을까. '내츄럴 시티'를 보는 감상은 묘하다. 미래 사회를 그린 이 영화에서 돈은 화면 곳곳에서 날아 다닌다. 누구나 이 영화의 때깔 좋은 화면에 돈이 날아다니는 듯한 환영을 보게 될 것이다. 3년여 동안 80억 가까운 제작비를 쓴 것으로 알려진 '내츄럴 시티'는 군데군데 뇌리에 맞는 멋진 신세계를 담고 있다. 이런 별천지를 창조해 낸 감독의 아이디어와 미술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의 기술력이 높이 평가되고 길이 기억됐으면, 나아가 계속 대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그러나 '내츄럴 시티'는 너무 오래 찍은 나머지 세 시간이 넘는 분량으로 편집돼야 마땅한 스타일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장면마다 꾹꾹 눌러 담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에는 이야기가 요령부득이다. 게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곧잘 나온다. '블레이드 러너''공각기동대''인랑'과 같은 영화들이 '내츄럴 시티'의 선배다. 존경할 만한 영화를 참조한 이 거대한 키치 조합물은 기억, 우정, 망각 등 보편적 소재를 다루며 꽤 철학적인 척한다. '폼생폼사'로 일관한 이 영화에서 끝내 마음에 남는 것은 그런 헛폼이 아니라 유지태가 연기하는 주인공 R이 사이보그 여자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다. 멜로드라마적 모티브를 축으로 영화가 전개됐더라면 더 매끈한 상업영화가 됐을 것이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 아직 멀었다.
'세크리터리'는 이상한 러브 스토리다. 메리 게잇스킬의 단편집 '악덕한 행동'에 실린 한 에피소드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어느 사도―마조히즘 커플의 사랑 찾기 과정을 좇아간다. 단순하게 말하면 소심증 마조히스트 여성이 사디스트 변호사의 비서로 들어가 갖은 학대와 훈육을 당하면서 해방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뭐 이런 얘기가 다 있나 하고 생각할 무렵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그 두 사람의 사랑을 지고지순한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관객을 설득한다. 감독 스티븐 쉐인버그는 세상 사람들이 변태로 규정하는 사도―마조히즘을 거리낌없이 표현하면서 그것이 단죄돼야 할 금기가 아니라 또 다른 소통의 방식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나 '크래쉬' 등의 영화에서 낯선 이상성욕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제임스 스페이더가 이 영화에도 주연으로 나온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이 배우가 이런 역할을 맡으면 늘 그럴 듯하다.
70년대 미국 TV 시리즈 'S.W.A.T.'을 스크린에 옮긴 'S.W.A.T. 특수기동대'는 TV 시리즈에서 캐릭터의 이름만 빌려오는 전략을 택했다. 훈련으로 다져진 몸매를 뽐내고 인질의 목숨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등 S.W.A.T.의 폼 나는 정의감에 초점을 맞췄다. 팀 개개인의 역할과 캐릭터를 역동적으로 보여주지 못하지만 액션 영화의 본분을 망각하진 않는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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