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감독을 이해하는 올바른(?) 길은 아니겠지만 필자는 언제부턴지 모르게 여배우를 통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매년 나오는 그의 신작엔 여지없이 신인 여배우가 등장했고, 아홉 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나온 지금은 그 숫자가 '유형화'가 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파란 대문'의 이지은과 이혜은, '수취인불명'의 방은진을 제외하고는 김기덕 감독은 항상 신인급 여배우를 기용했다. 제작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마 그는 백지장 같은 배우 위에 자신의 캐릭터를 그리는 화가의 심정으로 캐스팅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배우들은 김기덕의 영화를 통해 강렬한 데뷔전을 치렀다.
김기덕의 여배우는 어떻게 분류될 수 있을까? 첫번째 유형으로는 '아픈 여자'다. 그녀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 '수취인불명'의 반민정은 한쪽 눈을 잃었고, '섬'의 서정(사진)은 거의 말이 없다. '악어'의 우윤경과 '파란 대문'의 이지은은 아예 자살로 육체적 삶을 마감하려 한다. 그녀들의 몸은 착취, 혹은 학대받고 '수취인불명'의 넋 나간 여자 방은진은 자해한다. 그리고 종종 창녀로 그려진다.
두 번째 유형은 '미스터리 걸'이다. 김기덕 감독은 여성을 가끔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그려낸다. '실제상황'의 김진아와 '섬'의 서정이 그렇다. '해안선'의 박지아는 아예 귀신이었다. '야생동물보호구역'의 프랑스 배우는 온몸에 물감을 칠하고 조각상처럼 서 있다. 이처럼 그녀들에게는 낯선 이미지가 입혀지는데 국부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 '섬'의 마지막 장면은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순결한 여인'이다. 남자들은 그녀들에게 순애보를 바친다. '봄 여름…'의 하여진은 17세 소년이 순수한 사랑을 바치는 대상이다. '파란대문'의 고등학생 안재모도 창녀 이지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나쁜 남자'의 조재현이 서원에게 바친 사랑도 결코 일시적 육욕이나 파괴본능의 발로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들은 남자들에게 구원의 대상이며 성모 마리아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캐릭터를 그릴 때 감독은 관상학적으로 눈이 크고 앳된 얼굴의 여배우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가장 '김기덕스러운' 캐릭터 혹은 여배우는 누구일까? 흔히들 '서 시스터즈'(서정과 서원)를 꼽겠지만 필자는 '수취인불명'의 방은진에서 묘한 감흥을 느낀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맹목적인 기다림을 통해 서서히 미쳐가고, 그러면서 감독의 메인 테마로 서서히 다가간다. 바로 강박관념. 이것은 김기덕 감독이 남성 캐릭터에게만 허락했던 '특권'이었지만, 그것을 빼앗아낸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노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영화계에서 방은진만큼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여배우는 없어 보인다. 궁금하시면 검색해 보시길.
/김형석·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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