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한숨을 먹고 밤에는 눈물을 마시고…."지난 19일 밤 태풍 매미가 삶의 터전을 통째로 삼켜버려 '슬픔과 절망의 땅'으로 변한 경남 창녕군 유어면 대대마을. 바람 숭숭 들이치는 마을 입구 가건물 창고에 되는 대로 스티로폼을 깔고 임시 거처를 꾸린 주민들은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기약 없는 처지에 울화가 치민 남정네들은 술잔을 기울이고 아낙들은 구호품으로 받은 라면을 물이 없어 끓이지도 못한 채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신세타령을 내뱉었다.
"아침에 눈 뜨면 피 토할 심정인 기라. 이런 날벼락이 어딨노." 김석원(65) 이장이 왈칵 눈물을 쏟자 다른 주민들도 눈물 바람이다. "시아버지 제사도 못 모시고 집도 내려앉았으니 토끼 같은 새끼들은 어디서 키웁니까." 한 주민은 "복구에 매달려도 손이 모자란 판에 급식소 자원 봉사자들마저 떠나면 끼니 챙기는 걱정부터 해야 하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집이 물에 잠긴 수재민 60여명을 위한 컨테이너 박스 10채가 마련됐지만 주민들은 애써 외면한 채 밤 늦도록 창고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컨테이너 부근에 쌓아뒀던 3,000여 가마의 벼가 물에 잠긴 후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를 참을 수 없으려니와 정성을 다해 기른 작물이 하릴없이 썩어가는 모습이 더 가슴 아플 터였다. "추워 추워, 집에 가자"고 조르는 손녀(6) 성화에 컨테이너를 찾은 한차순(71) 할머니는 "냄새도 나고 비좁아서 잠을 잘 수 없다"고 혀를 찼다.
수재민들은 컨테이너에서 자는 대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아이는 친지 집, 부인은 창고, 남편은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실정이다.
불편한 잠자리와 부실한 식사로 수마(水魔)에 이어 병마(病魔)까지 수재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침수 1주일째지만 소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설사, 감기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
7명의 가족이 빈 손으로 집을 떠났다는 황재돌(62) 할머니는 "네 살, 다섯 살 손녀도 사흘 동안 밖에서 잠을 자고나더니 감기로 목이 부어 말도 제대로 못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마을 보건진료소 권춘화(50·여)씨는 "장티푸스 진료는 끝냈지만 일교차가 워낙 커 감기에 걸린 주민들이 많아 하루종일 약을 지어도 모자라다"며 "독감백신은 아예 없어 난감하다"고 걱정했다.
밤은 깊어 가는데 무심한 하늘은 또다시 빗줄기를 뿌려대고 있었다. "또 비 온다"는 고함에 "이제 무슨 걱정이고. 떠내려갈 집도 물에 잠길 논도 없는데…"라는 푸념이 얹혔다.
"제발 도와주이소. 이대로 조금만 더 가몬 우리 동네 사람들 다 죽습니더. 어려운 사정을 꼭 알려 주이소. 부탁입니더"라고 매달리던 주민들의 간절한 부탁이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창녕=이동렬기자 dylee@hk.co.kr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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