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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얼굴 /故 우진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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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얼굴 /故 우진옥 선생님

입력
200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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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다. 35년 전 시골의 초등학교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우진옥 선생님을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과 보냈던 어느 가을 날의 추억을 나는 언제나 생생하게 기억한다.선생님은 "내일은 학교 옆 저수지로 천렵(川獵)을 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천렵이란 강가나 냇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즐기는 놀이다. 부모님께 말씀 드렸더니 계란 한 꾸러미를 선뜻 내주었다. 친구들과 나눠먹고 선생님께도 드리라며.

다음 날, 저수지에 도착했다. 나는 밥 짓는 일을 맡았다. 요즘에는 많은 여자들이 어른이 돼도 밥을 못하지만 당시 시골 아이들에게 밥짓기는 기본이었다. 솔가지에 불을 붙이니 연기가 진동해 연신 기침을 해야 했다. 법석 피우기를 수 십 분,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고소한 밥 냄새가 피어 올랐다. 남학생들은 저수지로 들어가 메기, 붕어, 피라미를 제법 잡아왔다. 물고기를 잡아 계란을 푼 밀가루에 묻혀 물이 펄펄 끓는 냄비에 넣었다.

남학생들은 양 푼 그릇을 두드리며 "밥이 왜 이리 늦느냐"며 보챘다. 선생님은 반찬의 간을 보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어려운 일은 없는지 꼼꼼히 챙겼다. 나는 국을 나눠주는 일을 했는데, 평소 나를 왕눈이라고 놀렸거나 고무줄 놀이를 방해했던 아이들에게는 국을 '정량 미달'로 담아 주었다. 그 때 남학생들의 황당해 하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이후 나는 도시로 나가 학업을 계속해 이제는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수 년 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50대에 접어드니 그 때 그 시절이 자꾸만 생각난다. 당시 친구들은 이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더욱 옛 생각에 젖는다. 선생님, 하늘 나라에도 비가 옵니까?

/csis9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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