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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75>흙 뭉치는 석산뿌리 "단결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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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75>흙 뭉치는 석산뿌리 "단결상징"

입력
200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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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선득한 기운이 아니어도, 하루가 다르게 빨리 찾아오는 밤이 아니어도, 추석도 지났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가을이 왔음을 압니다.이미 계수나무 잎 빛깔이 변하고 예의 그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국립수목원에 가득 퍼집니다(예전에 계수나무가 풍겨내는 가을 향기에 대해 말씀 드린 것 기억나시나요?).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덩굴 잎도 이미 절반은 붉은 빛깔을 냅니다. 피는 꽃도 국화과 일색이네요. 넉넉하고 쾌적해야 할 이 가을에 나라 한 가득 걱정거리가 많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즈음이면 생각나는 꽃이 있는데 바로 '석산'입니다. '꽃무릇'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석산은 전남 함평이나 전북 고창 지역 절 주변 숲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을 피워 숲을 온통 붉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때쯤 '꽃무릇 축제'도 열려 사람들은 그 꽃을 보고 감탄하지요. 얼마 전 소개한 상사화와는 자매 같은 식물입니다. 물론 상사화처럼 꽃이 필 때 잎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러 석산을 상사화로 잘못 아는 이도 있습니다.

석산은 여름내 튼튼히 알뿌리에 양분을 저장했다가 기온이 내려가는 것을 신호로 꽃을 피우고 지금쯤 그 절정에 이릅니다. 사실 석산이 숲 가득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식물이 우리나라 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들여와 심은 식물이랍니다. 그 근거로 석산도 상사화처럼 절 주변에만 있고, 씨앗을 맺지 못하는 점을 듭니다. 염색체가 배수체이지요. 물론 세상에 있는 석산과 상사화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외부에서 도입됐다고 생각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것은 그러하지만 중국이 고향인 것은 씨앗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 석산이 지금 생각나는 것은 가을 초입을 장식하는 꽃이어서가 아닙니다. 그 꽃의 축제가 생각나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온 나라가 수해로 마음 아플 때, 석산의 흙을 붙잡고 있는 힘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석산은 구근이 있고 그 밑에 뿌리가 달립니다. 태풍이라도 불고 장마라도 져서 물이 넘치고 흙더미가 무너지게 되면 구근이 뜨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가 감지되면 사방으로 뻗은 뿌리는 조직을 촘촘하게 하며 작아지면서 흙을 뭉치는 효과를 내 뚝방 정도가 무너지는 것은 막아주지요. 석산은 자신이 살아가는 땅이 무너지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데 이것이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요. 정말 어렵지만, 모든 이가 단결해 땅을 지키는 석산의 뿌리처럼 마음을 합하면 피폐한 땅이 차츰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힘내십시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 @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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