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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전북 진안 노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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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전북 진안 노채마을

입력
200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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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채마을은 국도30호선을 벗어나 비포장길 1.5㎞를 들어가야 닿는다. 국사봉 골짜기 안쪽 마을 도린곁에는 아직 전기가 안 들어오는 집이 있다. 계곡물을 끌어다 쓰는 상수도 꼭지에서는 새끼손가락 만한 가재도 심심찮게 나온다. 주민들은 그 물로 밥을 하고 숭늉을 끓이고 빨래도 한다.홍골 가장 깊숙한 골에 터를 잡은 게 한견종씨 집이다. 그는 산지기 자격으로 종중 선산을 빌어 머루농사도 짓고, 고로쇠나무와 두릅을 키우며 산다. 야산에 심은 머루가 익으면 아래쪽 열매는 너구리가, 위쪽은 새 벌 나비들이 먼저 손을 대고, 한씨가 수확하는 것은 절반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철망 두르고 악착같이 지켜 설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는 27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최근에 귀향한 덕에 받는 연 1,500만원의 연금만으로도 마을에서는 부농 축에 든다.

그와 이장 등, 아직은 동네 잔치 때마다 술주전자 들고 심부름 다녀야 하는 나잇대의 농사꾼들은 이 참에 마을 면모를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을 안 길도 넓히고, 내팽개쳐진 야산들도 정비해 체험민박도 쳐 보고, 머루주와 농산물 장사도 앉아서 해보자는 심산이다. 전국 댐 가운데 규모 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용담댐이 있고, 으름에 다래에 여름 산 과일이 지천인 마을도, 손님에게 닭 잡아주는 게 재미라는 동네 인심도 봐줄만 하겠기 때문이다. "좀 있다가 감 훑으러 다시 오시소." 아쉬운 듯 마을을 나서던 길, 마을 진입로는 포장공사가 한창이었다.

몇집이 어울려 이장 네에서 김치를 버무리던 날(17일). 소문 듣고 50줄 이장 또래 청년들이 하나 둘 모이고, 이내 배추 겉절이에 생두부 새참 판이 벌어진다. 저녁 밥 때는 이르고, 출출하던 차다.

―손님(기자)도 왔응께 머루주 한 병 내와 봐!

―그랴. 이런 날 아니믄 언제 또 오리지날 머루주 맛 보겄어?

하지만 15도짜리 360쭬 머루주 한 병에 분위기가 살 턱이 있나.

―안되겄다, 칵테일루다 마시자. 야야! 가서 댓병(소주) 하나 받아온나.

대화는 추석 대목 전 정병홍(52)씨 '무 헛장사' 얘기로 접어든다.

―속이 탄께 세 눔이서 어른 장딴지만한 무수(무)를 한 트럭씩 뽑아 싣고 전주 아파트촌으로 직거래를 나선 겨.

아름찬 무 하나가 200원인데, 세 개 사면서 500원으로 깎더라는 얘기. 그것도 집집이 배달 안해주면 안사더라는 얘기….

―근디, 장사 끝내고 밥 사묵고 소주 한 잔씩 하고 나니께 주머니에 한 푼도 안 남더라는 겨.

입으로는 웃었지만, 표정들은 저문 날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누군가, 소주 탄 머루주인지 머루주 탄 소주인지를 쳐 들며 '이거이 희망인디' 했고, 모두들 '글씨, 잘 돼야 할 거인디'하는 얼굴들.

―저, 작것들은 오늘따라 왜 저리 지랄인 겨?

인근 농장의 발정 난 사슴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애먼 화풀이를 해대며 사람들은 어두운 고샅 길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전북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노채마을. 마을에서 전주 대전 영동 거창이 각각 150리 길이고, 진안 무주 장수 읍내가 각각 50리. 첩첩 산골이라지만 교통 요지에 3도(충청 전라 경상) 교류 중심지라 인근 7개 면민이 모이는 안천5일장이 열리고, 우시장에 여관까지 섰던 마을이다. "교육도 중심지였어. 안천중학교에 7개 읍면 9개 초등학교에서 공부께나 한다는 아그들이 모였응게."

그러던 마을이 2001년 용담댐이 들어서면서 말이 아니게 됐다. 아니, 급하게 면세(面勢)가 기운 것은 주민 이주가 시작된 90년대 중반부터. 6개 읍면 68개 마을이 물에 잠겼고, 이 가운데 안천면은 18개 마을 가운데 10개가 수몰지구에 들었다. 쓸만하다던 문전옥답이 절반 이상 사라지고, 태풍보다 더 무서운 투기 광풍이 휩쓸고 나자 2,500명쯤 되던 면 인구는 1,000명 남짓으로 줄어 있었다. 마을에는 외지 투기꾼들이 사뒀다는 쇠락한 농가들이 적지 않아, 뜰에 선 감나무며 호두나무들이 제 혼자 열매를 맺었다 떨궜다 하며 좋았던 옛 세월을 더듬는 듯 했다.

보상비를 탄 주민 열에 아홉은 서로 모시겠다며 나대는 도회지 아들 네로 더부살이도 가고, 어디 가서 구멍가게라도 한다며 마을을 떠났다. 나가봐야 별 수 없겠거나, 차마 고향 선산을 등질 수 없어 남은 이들은 100여 세대 200여 명. 주로 댐에서 가까운 노채마을에 모였다. 하지만 평당 1만원도 안 하던 논밭이 5만원을 호가하니 예전 같은 농사는 엄두도 못 낼 판이었다. 주민들은 하나 둘 야산 못난 땅에 머루를 심기 시작했다. 인근 무주며 임실이 머루농사로 재미를 보고있던 터. 해발 350m 준고산 기후며 토질이며, 습도, 농사 기술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꿀리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하나 둘 시작한 농사가 포도농사보다 훨씬 낫다는 게 입증되면서 열 농가, 스무 농가로 늘던 차에 진안군 농업기술센터가 기름을 부었다. 하는 김에 생과(生果)로만 팔지 말고 직접 술을 만들어보라는 것. 머루 영농조합 농민들은 도 지원금 8,000만원에다 집집이 출자한 2,000만원을 보태 어렵사리 법인을 설립하고 공장을 세웠다. 영농법인 '마이산 머루'의 조합원은 현재 91명. 그 사이 쏟아부은 돈이 융자에다 보조금에 뭉칫돈까지 합쳐 8억원이 넘지만, 사장(조합장)도 3명의 이사도 아직은 보수 한 푼 없는 머루 농사꾼들. 종업원도 농사 틈틈이 짬을 낸 일당 2만5,000원의 마을 아낙네들이다. 농업기술센터 지도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최소 1년의 숙성기간을 거친 무농약 마이산 머루는 지난 추석 사실상 처음 상품으로 선을 뵀다.

"공장 일도 사업도 농사꾼의 자존심 하나로 해볼랍니다." 총무이사를 맡은 한견종(51)씨는 이미 시판중인 머루주들과 맞붙어 지지 않으려면 논·밭에 서는 농사꾼의 마음이 필요하겠더라고 했다. 운영진의 경영 원칙은 농약 친 머루는 한 알도 수매하지 않는다는 것. 당장에 굶더라도 1년 이상 익히지 않은 술은 안판다는 것. 농사지을 때처럼 당하고 기죽어가며 장사하지는 않겠다는 것. "판로 개척한답시고 대도시 주류도매상과 만났더니 '백 마진(커미션)'을 요구하고, 시음용 상품을 주문량의 20∼30%씩 달라는 겨. 일 없다고 하고 돌아왔지 뭐." 750쭬 선물용(소비자가 2만4,000원)은 고사하고 360쭬 업소용(5,000원)도 아까워 조합원들조차 아껴가며 맛을 보는 술인데 어처구니가 없더라고 했다. 조합원 간에 이견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운영진의 '정도(正道) 경영' 뜻은 관철됐다. 머루밭 3,000평을 짓는 황의택(57)씨도 "죄지은 것도 없이 도시 장사꾼들에게 굽신거려 가며 술 팔아 큰 돈 벌 욕심은 없다"고 했다. 대신 품질 만큼은 사업하는 사람들이 내는 머루주와 뭐가 달라도 다를 테고, 세월을 두고 버티다 보면 아는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라는 믿음만은 굳건했다. 지난 추석 마이산 머루는 지역 국회의원 등의 선물용 주문이 쇄도, 공장과 익산 직영점 등 두 곳에서 5,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맛을 보고 다시 연락을 해오는 이들이 많아 자신감도 생겼다고 했다.

―그래도 이왕 시작했응게 보란듯이 성공해야지. 마케팅이 문젠디….

―그랜저 타면서 골프채께나 끼고 댕기는 사람들 간에 입 소문이 먼저 나야 혀.

―암만, 몸에도 좋은 비싼 술이니 그 쪽에다 타겟을 맞춰야 할 껴.

―그라모 출세한 출향민들 명단 구해다가 핀지라도 한 차례씩 보내 볼까나?

/진안=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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