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악화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 기여해야 하는가? 우문(愚問) 같이 들리겠지만 결코 우문은 아니다. 지금 일부 언론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악화시키는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노사관계에서부터 국책사업에 이르기까지 갈등이 벌어지는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는 '싸움'의 내용을 중계하는 데만 치우치고 있다. 싸움 당사자들의 유불리(有不利)와 전략전술을 소개하는 기사는 흘러 넘치지만 쟁점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 갈등을 권투 경기처럼 취급한다는 점에서 그런 보도 태도를 가리켜 '권투 저널리즘'이라 부를 만하다. 쟁점에 대한 여론의 심판을 받을 길이 없어지면 갈등을 빚는 당사자들은 실제로 권투 경기를 하듯이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갈등은 합리적인 해소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불행한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부안 핵 폐기장 문제 관련 보도는 '권투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쟁점은 실종된 채 갈등만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부 언론은 갈등에 대해서조차 극심한 왜곡불공정 보도까지 일삼고 있어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부안에서는 과학을 신뢰하는 '믿음'과 공포를 맹종하는 '감정'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어느 기사의 일부 내용이다.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부안 군민들이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보수 신문들은 위도 핵폐기장을 기정 사실화하는 전제를 깔고 보도와 논평을 하면서 갈등마저 위와 같은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정말 큰 일 날 짓이다. 정부의 오판을 유도하는 왜곡보도는 모든 당사자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자신의 주장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자체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보도하고 논평을 해야 모든 당사자들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일부 언론은 정반대로 나가고 있다. 사실은 왜곡해 보도하면서 자신의 의견은 당당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속임수' 또는 비겁한 '이중 플레이'가 갈등을 더 키우고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갈등을 빚는 사람들 사이의 생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은 생각의 차이 때문에 분노하지는 않는다. 상대편이 나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자신의 정당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비겁한 수법을 쓸 때에 분노하는 것이다.
언론은 물론 정부도 부안 사태의 핵심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 부안 군민들이 느끼는 분노의 실체는 이미 핵 폐기장 문제를 넘어섰다. 그들은 지금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하는 더욱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론에게 '갈등의 해결사' 역할을 주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권투 저널리즘'에 대해선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싸움 중계만 하게끔 되어 있는 기존 취재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보면서 쟁점에 정면 대응해야 할 것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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