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광인 K(43)씨는 최근 큰맘 먹고 탄소나노튜브 소재의 라켓을 새로 구입했다. 이전에 쓰던 것보다 가볍고 견고하며 탄성도 뛰어난 이 라켓으로 바꾸고난 후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테니스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인사를 자주 받는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CNT)'가 생활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이 소재로 만든 골프채, 스키보드, 낚시대 등도 잇달아 나올 예정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미래의 산업 판도를 바꿀 10대 기술로 꼽은 탄소나노튜브는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본다.탄소나노튜브란?
1991년 일본 NEC사 부설연구소 이지마 수미오(飯島澄男) 박사가 전자현미경으로 탄소구조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탄소나노튜브를 처음 발견했다. 형태는 탄소 6개로 이루어진 육각형이 서로 벌집처럼 연결돼 아주 긴 파이프 모양을 하고 있다. 파이프의 지름은 수∼수십㎚(1㎚=10억분의 1m)에 불과하지만 밧줄처럼 다발로 묶으면 강도가 강철보다 100배 강하고 유연성이 아주 뛰어나다. 또한 구리보다 전류가 잘 통하고 열전도율은 자연계에서 가장 뛰어난 다아아몬드와 비슷하다.
탄소나노튜브는 반도체처럼 전기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어 실리콘보다 1만배 가량 집적도가 높은 소자(素子)를 만들 수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는 탄소나노튜브의 여러 가닥이 별도의 공정없이 곧바로 반도체가 된다는 것을 발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쓰임새
자동차 연료통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정전기. 탄소나노튜브는 이런 정전기를 없애는 해결사로 각광을 받고 있다. 휘발유가 출렁거리면 정전기가 발생하는데 연료통에 전기가 잘 통하는 탄소나노튜브를 와이어형태의 복합소재로 만들어 연결시키면 연료통의 정전기를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 이미 미국자동차의 60%가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정전기 제거 와이어를 연료통에 붙여 사용하고 있다.
또 페인트에 탄소나노튜브를 섞으면 페인트의 접착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동차 자체 페인트에 이를 섞어 사용하고 있다. 비행기에 벼락이 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비행기 표면에 바르는 페인트에 탄소나노튜브를 함께 섞어 사용하는 것도 연구중이다. 전기전도도가 구리보다 좋은 탄소나노튜브가 대기중의 전하를 흡수하는 피뢰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탄소나노튜브의 표면에 기체분자가 붙으면 전기전도도가 변하는 특성을 이용해 기존 탐지장치(센서)보다 훨씬 기능이 뛰어난 극미세 탐지장치(센서)도 개발되고 있다. 극장, 자동차, 동굴, 비행기 등과 같은 폐쇄 공간에서 이 탐지기를 사용하면 탄산가스 농도가 일정기준을 넘으면 환풍기가 자동 작동된다.
탄소나노튜브가 다른 물질로 만든 전극보다 훨씬 낮은 전압에서 전자를 효율적으로 방출하는 성질을 이용,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아주 소형화할 수 있다. 벌써 이를 이용한 탄소나노튜브 디스플레이(FED·Field Emission Display) 제품이 나왔다. FED는 기존 평면 디스플레이에 비해 화질이 좋고, 소비 전력이 아주 적어 대화면 HDTV나 대형 광고판 제작에 아주 좋다. FED는 극한 환경에서도 성능이 우수하고 오작동이 없어 미군은 5∼7인치 소형 디스플레이로 만들어 군용차량에 배치해 사용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를 전자파 차단장치로 이용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이에 따라 TV모니터, 휴대폰, 컴퓨터 등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흡수에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전투기와 탱크,지프차, 군함에 가벼운 탄소나노튜브를 함유한 페인트를 발라 레이더를 피하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탄소나노튜브는 레이더에서 발사하는 전자파를 흡수해레이더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조만간 스텔스비행기처럼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군함, 탱크, 장갑차 등이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대량합성 기술개발 서둘러야
이밖에 탄소나노튜브는 솜털처럼 가볍고 인장력이 강철보다 강하기 때문에 '우주 엘리베이터(space elevator)'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우주선 발사에 너무 많은 돈과 위험성이 따르기 때문에 지구와 지구 궤도를 도는 정지 인공위성 사이에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지구와 우주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안전하게 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1960년 러시아의 기술자가 처음 내놓았으나 과학 소설가인 아서 클라크가 1979년 '낙원의 샘'이라는 소설에 묘사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나노기술 권위자인 미국 라이스대학 리처드 스몰리 교수 등은 탄소나노튜브를 사용하면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대 나노공학과 이철진 교수는 "탄소나노튜브가 미래 산업의 판도를 바꿀 신소재이지만 아직 대량 합성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며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 대량합성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우리도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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