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방법론의 문제다. 무엇을 위해서 정치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정치하느냐가 중요하다. 왜 그런가. 정치는 종교나 사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다원적 사회를 통합하는 메커니즘일 뿐이다. 갖가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갖가지 다른 이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조정하여 국가와 사회를 유지시켜 나가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이 기능을 제대로 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다.요즘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새로운 다당체제의 출현이다. 과연 이것이 정치가 잘 되는 길인지, 혼란을 가중시키는 길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신당이 시대의 소명인 정치 개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일리가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불만족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자기나라 정치에 만족하는 국민들은 지구 상에 없다. 그러므로 새 체제가 좋은 방향인지의 여부는 어떤 이상에 입각해서 판단할 게 아니고 현실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를 기준 삼아 냉철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는 그런대로 사회발전을 뒷받침하면서 함께 발전해온 게 사실이다. 특히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인권 신장을 이룩한 민주화 과정은 한국인들이 자랑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야당과 언론이 독재와 부패를 견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변혁의 와중에서 국가안보를 지키고 국정 운영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강력한 대통령제가 긍정적 역할을 했다. 또 하나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부패와 정경유착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 정치에 큰 변혁이 필요한가, 아니면 기존의 관행을 조금 개선하면 되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선진국으로 발전하느냐 다시 후진국으로 내려 앉느냐의 기로에 있다. 현재의 정치 행태가 계속 된다면 선진국으로 가기는 힘들다. 한국 경제는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기술이 고도화하는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뒷받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 개혁의 당위성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정치는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고 현실적 타당성의 문제다. 정치변혁이 혼란을 초래하면 오히려 그 동안 쌓아 올린 경제적 성과마저 무너질 수도 있다.
신당에 대한 평가는 결국 앞으로의 국정 운영이 잘 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반드시 신당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당이기 때문 만은 아니다. 기존의 정치판을 깨고 새로운 판을 열었으면 그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 동안 새 정부에서 집권당은 제 역할을 못했다. 이른바 신주류라는 사람들도 국정에서 배제되었다. 국정은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배타적으로 운영되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국정에 대한 영향력도 없으면서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당의 성공 여부는 어떻게 하면 좋은 총선 출마자들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 동안 혼란상을 보여온 국정이 과연 제 방향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대다수가 기본적 생각은 좋으나 경륜과 능력 면에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인재 풀을 넓히도록 인사권자를 설득하는 것도 신당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다당체제의 역사적 정당성은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고 경제성장이 지속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이미 일어난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어떤 정파에 유리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새로운 정치구도가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채 수 찬 미 라이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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