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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본 질병]<10·끝>왠지 미운 의사, 왠지 좋은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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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본 질병]<10·끝>왠지 미운 의사, 왠지 좋은 환자

입력
200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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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첫 인상이 좋고 어떤 사람은 왠지 처음부터 거부감을 준다. 그 사람과 어떤 일을 같이 하면서 구체적인 경험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병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의사는 믿음이 가고, 어떤 의사는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의사 입장에서도 어떤 환자는 정말 안타까워서 도와주고 싶고, 어떤 환자는 마음에 부담이 생겨 멀리하고 싶다. 이러한 일은 환자나 의사가 인간으로 남아있는 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하는 정도를 의식적으로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어서 바람직하다.

왜 처음 만난 사람이 내 마음 속에 호감이나 부담감을 불러 일으키는가? 이것은 무의식의 힘이다. 과거에 우리가 경험해서 그 인상을 마음속에 보관해 놓은 어떤 사람과 유사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과거의 인물에게 느꼈던 유사한 감정을 현재의 인물에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정신분석 용어로는 전이(轉移)라고 하며 감정을 옮긴다는 뜻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참조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전이현상이 일어나면 치료과정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방해가 되기 쉽다. 흔히 의사들은 냉정하다고 평하는데 이는 사실 의술 자체가 냉정한 객관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장기간의 수련을 통해 굳어진 특성이다. 수술을 앞두고 마취된 상태의 환자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연민의 감정에 휩싸이는 외과의사가 있다면 수술을 하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의사는 자기 가족을 직접 수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과적인 치료도 마찬가지여서 약물을 필요 용량보다 적게, 또는 많게 처방 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젊은 의사가 노년의 여성 환자를 일전에 돌아가신 사랑하던 어머니로 무의식적인 착각을 일으켜서 필요한 검사를 안 하거나, 필요없는 검사를 한다면 제대로 된 진료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남편과 왠지 비슷하게 보이는 중년의 의사에게 어떤 환자가 꾸준히 다니면서 치료를 받겠는가. 의사를 골탕 먹이고 싶은 무의식의 힘에 위해 예약시간에 오지 않거나 처방 된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행동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현대의학은 매우 합리적인 모습을 띄고 있으나 그 안에서 움직이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인간의 무의식의 한계 내에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차가워 보이는 현대의학의 차라리 인간적인 측면이다.

정 도 언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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