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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기상청 예보관리과장 홍윤씨의 날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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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기상청 예보관리과장 홍윤씨의 날씨 이야기

입력
200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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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날씨를 한자용어로 '기상(氣象)'이라고 쓰지만 예전에는 '천기(天氣)'라고 했다. 일본식 한자어라는 이유로 바뀐 것이지만 사실 두 단어가 주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기상'이라고 하면 왠지 인간의 영역 안에 있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반면, '천기'라면 그야말로 천상의 세계에 속한 것이어서 감히 범접치 못할 대상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요사이 태풍 '매미'로 인한 세상의 고통이 하늘을 찌르는 것을 보면 역시 날씨는 인간이 여전히 어쩌지 못하는 하늘의 기운이 맞다.그러니 그것을 예측한다는 것이 어찌 예사로운 일이랴. 그야말로 천기(天氣) 아닌,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는 일일지니.

홍윤(洪允·50)씨는 우리나라에서 최장수 기상 예보관이다. 현재 기상청의 예보관리과장을 맡고있는 그가 겁 없이 그 천기를 빼내는 일을 해온 지 벌써 스무해를 넘겼다.

태풍 '매미'로 잃은 정신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또다시 폭우가 내습한 지난 주 목요일 오후 3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호우주의보가 속속 경보로 바뀌고 서울 경기의 저지대 도로들이 물에 잠겨가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서울 보라매공원 옆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 전·현직 예보관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모여 들었다. 하루 두 차례 이뤄지는 정규 예보 브리핑 시간이다. 방 입구에는 '호우비상근무'라는 표식이 내걸렸다.

이날 주간(晝間) 근무책임을 맡은 예보관이 예보국장을 비롯한 베테랑 선배들과 동료들 앞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입수된 기상정보들을 근거로 주도면밀하게 분석해낸 예측 결과들이다. 정면의 벽을 채운 대형화면에는 위성과 레이더로 잡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구름사진, 기압배치도, 전국 관측소에서 보내진 실시간 영상 등이 시시각각 바뀌어가며 전시됐다.

"구름대가 북서쪽으로부터 남하하고 있습니다. … 강우량은 시간 당 30㎜로 앞으로 6∼7시간이 강수 피크가 되리라고 예상됩니다. … 부이(buoy) 자료에 따르면 … 서해남부에 폭풍 주의보가 예상됩니다. … 태풍 15호는 대만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태풍의 눈은 형성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세력이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델로는 (일본 쪽으로) 우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

동석한 이들이 차례로 질문을 던졌다. "(브리핑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다만 시뮬레이션 상 강수가 중북부에서 더 강하지 않겠습니까?" … 마지막으로 홍윤씨 차례. "서울의 강수는 거의 끝물로 판단되는데, … 그러므로 앞으로 다른 지역의 특보는 괜할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 브리핑과 토론은 20여분 만에 끝났다. 의견들이 취합돼 내려진 결론은 곧바로 언론을 통해 발표됐다.

― 왜 그런 의견을 냈습니까.

"저기압이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보았지요. 이미 노쇠기에 접어들었거든요." 과연 홍씨의 말대로 들이붓던 서울의 비도 두어시간 만에 거짓말처럼 멎었고, 다른 지역의 빗줄기도 밤이 되기 전에 대부분 가늘어졌다.

(솔직히 털어놓건대 홍씨는 재미있는 인터뷰 상대는 아니었다. 사연이 기막히거나, 분위기가 독특하거나, 아니면 같은 얘기라도 구수하게 풀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첫 인상부터 깐깐해 보인 그는 '우려'했던 대로 기상학 강의를 하듯 인터뷰에 응했다. 어떤 질문에도 대답은 금방 전문적인 얘기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기상청에서 예보에 관한한 가장 경력이 풍부하고 유능한 인물로 서슴없이 꼽은 이가 바로 그니까. 홍씨는 대학에서 기상학을 전공하고 중앙관상대 시절이던 1980년부터 줄곧 기상연구와 예보의 한 길을 걸어왔다.)

― 업무에 얽힌 뭐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습니까.

"그런 게 있겠습니까. 단 3∼5명이 일직, 야근, 대기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예보관은 3D 직종입니다. 며칠 밤 꼬박 새는 것쯤은 예사지요.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일 뿐입니다." 이러니 재미있는 얘기거리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겠다. 평소 접하기 힘든 기상학 공부나 하는 셈 치자.

# 기상학이란 가장 과학적인 분야다. 움직이는 모든 게 그러하듯 날씨도 물리적 법칙에 따른다. 돌멩이를 던졌을 때 그것의 무게, 운동량, 운동방향, 마찰계수 등을 따져 착지점을 산출해 내듯 기상학에서는 공기덩어리의 움직임을 그런 식으로 예측해 낸다. 당연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가장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는 국방부나 기상청에 있다.

# 계산을 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대기압, 기온, 풍속, 풍향, 습도 등이다. 이들 재료가 많을수록 계산결과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수십㎞ 상공까지의 대기를 수평, 수직으로 가상 분할해 그 곳 각각의 관측자료를 수집한다. 이것을 슈퍼컴퓨터가 수식모델에 따라 계산해낸 결과가 기상예측의 기본자료가 된다.

# 그렇다면 일기예보가 틀릴 이유가 없지 않냐고? 일정한 관측값만 있으면 분명한 계산결과를 산출해 낼 테니. 그러나 기상예측 수식은 단순치 않은 이른바 비선형(非線形) 방정식이다. '카오스 이론'이나 '나비이론'으로 설명되는 그것이다. 더구나 무작정 관측지점을 늘릴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도 그렇지만 계산시간이 길어져 예보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결국 예보관들의 축적된 경험과 판단이 최종 관건이 된다.

일단 여기까지다. 너무 어려운가? 하기야 우리들이야 저녁뉴스, 혹은 조간신문에 난 날씨예보를 보면 그 뿐이니까. 아마도 모든 예보관들이 가지고 있을 서운함을 홍씨도 털어 놓았다. "사람들은 예보가 맞으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잊어 버리지요. 칭찬이란 건 없습니다. (이번 '매미'의 예측은 아주 정확했다. 이틀 전에 남해안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보가 나갔다) 하지만 빗나가면 온갖 비난이 쏟아집니다. 휴대폰 번호까지 알아내선 욕설을 퍼붓지요."

실제로 홍씨는 집중호우를 예상치 못했다 해서 여러 번 감사원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98년 8월 지리산의 돌발적인 호우로 시작, 20일 동안 국지성 집중강우로 전국에서 큰 피해가 났을 때다. (당시 '게릴라성 호우'란 용어가 일반화했다)

"고·저기압은 수천㎞, 태풍은 수백㎞에 걸치는 반면, 작은 비구름은 수십㎞킬로 정도에 불과합니다. 생성에서 소멸까지 시간은 이 규모에 비례하지요. 태풍의 일생은 2주일 정도지만 작은 비구름은 수시간 만에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바로 그런 경우였지요." 그 두해 전 강원 철원 지역의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 한 밤 막사에서 잠자던 군인들이 희생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예보관들에게는 "밤이 무섭다"는 말이 생겨났단다. 피곤한 가장들이 아내와의 잠자리를 부담스러워 하는 농담이 아니다. "'타임 래그(Time lag)'때문입니다. 해가 지면 빠르게 식는 위쪽 공기와, 채 식지않은 지표면의 공기로 인해 대기가 불안정해 지지요. 공기가 뒤집히는 겁니다. 이 때 주변 지형, 기압장, 바람 등의 미묘한 요소가 어느 순간 방아쇠(Trigger)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구름이 형성되고 폭우가 쏟아지지요. 국지성 집중호우는 그래서 대개 밤에 발생합니다. 예측불허지요."

내친 김에 예보관들이 싫어하는 걸 더 들어보자. '2똥'이란 게 있단다. 비가 올똥(물론 표준어는 아니다) 말똥한 데다, 온다해도 오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다. 이걸 어떻게 예보하는 가에 따라 특히 주말이나 휴일 관광지, 세차장 등의 매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니 고민이 안될 도리가 없다. 또 하나, '남풍(南風)'이다. 노래 속의 '산 너머 남풍'이야 낭만적이지만 예보관들에게는 큰 비가 올 조짐일 뿐이다. 오죽하면 "따뜻한 남쪽 바람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푸념들을 할까.

날씨라는 게 이토록 천변만화(千變萬化)이니 가뜩이나 완벽주의에 가까운 홍씨가 마음 놓고 쉰 적이 있을 리 없다. 지금껏 명절이나 휴일에 가족이 함께 어딜 다녀온 기억이 별반 없다. 얼마 전에도 모처럼 길을 나섰다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고 그냥 차를 돌렸다고 했다. (구입 7년 된 그의 승용차 주행거리가 2만5,000㎞라면 알만하지 않은가)

홍씨의 '강의'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들다 보니 어째 예보관들의 사정만 들어준 셈이 됐다. 분명 틀린 예보로 낭패를 보고 화를 낸 경험이 누구나 있을 터인데도. 아무려나 하늘의 심중을 읽는 일이 쉬울 턱 없다는 새삼스런 사실에 우리들 모두 더욱 겸손해질 일이다. 어쩌겠는가. 점차 잦아지는 기상이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우리가 하늘을 의식하지 않고 오만하게 살아온 데 따른 업보인 것을.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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