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사이 블랙 유머(병적인 유머)가 부쩍 성행하고 있다. 80년대, 90년대엔 주로 대통령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블랙 유머가 유행했는데, 이젠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블랙 유머들은 인터넷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온 나라에 전파되고 다시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흘러간다. 칙칙하고 불쾌한 내용도 있지만, 감탄할 만큼 재치 있는 것들도 있다. 세태를 잘 풍자한 유머들은 여기저기서 웃음을 선사하며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웃음 속에서 뭔가 생각하게 한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라는 편지는 누가 누구에게 쓴 걸까. 도시의 아들 집에 다니러 왔던 아버지가 자기 집으로 가면서 아들에게 남긴 편지라고 한다. 아들 집에서 얼마동안 머물면서 아버지는 가족들의 우선순위를 파악했다고 한다. 1번은 손자, 2번은 며느리, 3번은 아들, 4번은 강아지, 5번은 가정부, 할아버지인 자기는 6번이었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란 구절에는 이 시대의 노인과 남자들의 비애가 담겨있다. 얼마 전 60대 남자들의 저녁 모임에서 누가 이 유머를 전했는데, 모두들 재미있게 웃으면서도 여자들에 대한 비난을 숨기지 않았다. 시부모와 남편 귀한 줄은 모르고 저 자신과 자식밖에 모른다는 비난이다.
"3번은 확실해요? 혹시 4번 아닐까?"라고 내가 약을 올렸더니 좌중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리고 한 사람이 이렇게 한탄했다. "맞아. 우리 집에선 개가 3번이고 내가 4번인 거 같아. 한평생 가족 벌어 먹이고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다니, 이거 너무 하잖아?"
늙은 시부모는 6번, 남편은 3번 혹은 4번 그것이 요즘 세태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 2번인 며느리도 늙으면 별수없이 6번이 된다. 우리 모두 6번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속절없이 6번이 될 수는 없다. 한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아 온 사람들은 노년에도 스스로 1번이 돼야 한다.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2001년 현재 한국여자의 평균수명은 80.0세, 남자는 72.8세다. 10년 전에 비하면 4∼5년, 30년 전과 비교하면 14년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 71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여자 66.1세, 남자 59.0세였다.
이런 추세로 평균수명이 길어진다면 90세, 100세를 사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대비가 아니라 인생 100년을 설계해야 한다. 60세에 정년 퇴직하여 90세까지 산다면 정년 후 30년은 그가 일하던 30여년과 맞먹는 긴 세월이다. 그 긴 세월을 여생(남은 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30년은 인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시기다.
이번 통계에서 남녀의 평균수명 차이는 7.2년으로 85년보다 1.2년, 91년보다 1년이 줄어 들었다. 남자의 수명증가가 여자의 수명 증가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외국 학자의 주장이 나온 적도 있다. 의료기술 발달로 각종 질병에서 남자의 사망률이 낮아지는 데 비해 여자는 사회진출 확대로 전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부부는 점점 더 긴 세월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노인들처럼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독립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남편이 늙기도 전에 '3번 혹은 4번'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고 자조할 게 아니라 왜 아내와 밀접한 정서적 연결을 맺지 못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은 같이 있고 싶어서 결혼하지만, 그 결혼생활이 사오십년에 이르면 같이 있는 게 괴로운 관계가 되기 쉽다. 정서적인 연결이 약해지고 오랜 한이 쌓이고 고집만 강해져서 황혼이혼이 늘어나기도 한다.
장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립, 사회활동의 확대 등과 함께 부부가 어떻게 긴 세월 같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블랙 유머로 표현하기도 힘들만큼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노부부의 행복을 돕는 프로그램들이 나와야 한다. 노년이야말로 진정한 반려가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부부생활이 완성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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