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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책 시식"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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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책 시식"의 즐거움

입력
2003.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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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피아노협주곡을 들으러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음악회에서 내 마음이 가장 설레는 순간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 연주자들이 악기의 음을 맞추는 때다. 표를 내고 들어서며 그 소리를 들으면 그들의 기나긴 연습, 중간 중간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극복하느라 힘들었을 시간과 연주를 앞둔 긴장감이 느껴지면서 연주를 들으며 그들과 공감하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그러나 그날의 음악회에는 그 튜닝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치 전채 요리가 빠진 채 바로 메인 코스로 들어가는 식사 같았다.서점에서도 비슷하다. 대형서점에서 그 많은 책이 주제별로 나뉘어 진열된 것을 보면 그 책을 쓰느라 힘들었을 저자들과 또 저자의 손에서 넘어온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출판사와 인쇄소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서가에서 책을 뽑아 표지부터 보면서 내용의 분위기를 짐작해 본다. 그리고 저자 소개를 찾아본다. 요즘은 단순히 저자 약력을 나열한 것보다 그 저자만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도 많다. 출판연도와 몇 쇄인지를 보고 쇄를 거듭했으면 많이 읽힌다고 판단한다. 특히 번역서는 원서의 출판연도를 확인한다. 만약 원서가 오래 전에 출판되었으면 양서로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본다. 저자나 역자의 말, 서문이 있으면 먼저 읽어 저자의 의도나 저술 방향을 파악하고 목차를 살펴 내용의 큰 테두리를 그려본다. 이제 한 번 읽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 책을 산다. 시간이 넉넉하면 앞의 몇 페이지를 읽어볼 수도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때로는 애초에 사려고 했던 책이 아니라 그 부근에 꽂혀 있던 비슷한 내용의 다른 책을 사는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 책은 내 책꽂이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다. 왜냐고? 이미 전채 요리로 충분히 입맛을 돋워 놓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직접 서점에 나가기보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는 때가 많다. 도서 데이터베이스를 워낙 잘 만들어 놓아 원하는 책을 검색하면 저자와 역자 소개는 물론, 출판사의 책 소개, 인상 깊은 구절, 독자 서평에 맛보기로 표지와 내용도 몇 페이지 올라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주제의 책, 그 책을 산 독자는 어떤 다른 책을 샀는지 한 눈에 볼 수 있고 때로는 알아서 이런 책은 어떠냐고 권해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모든 책이 이렇게 풍부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설령 여러 면에서 적당해보여 샀더라도 막상 읽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서술 방향이 다르고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문장이 어색해 결국엔 안 읽고 마는 책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버스를 타고 대형 서점으로 간다. 그리고 책이라는 외형을 가진 지식, 감성, 재미의 바다에서 어떤 작품을 만날지 기대에 찬 큰 숨을 들이쉬며 매장에 들어선다.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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