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에르보 글, 그림·이경혜 옮김 베틀북 발행·8,500원 7세 이상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가령 시간이나 슬픔 같은 것을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어떤 모습일까. 해가 저문 뒤 밤이 오기 전, 그리고 어둠이 걷히고 해가 뜨기 전 어슴프레한 빛의 공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 로 잘 알려진 벨기에의 그림책 작가 안 에르보는 신간 '파란 시간을 아세요?' 에서 이 특별한 시간을 매우 아름답고 적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불을 켜기엔 아직 환하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기엔 조금 어두운"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가 돌아갈 때만 조금 달라지는 슬프고 아름다운" 그 시간을 그는 '파란 시간'이라고 부른다.
길고 마른 몸에 푸른 외투를 걸친 파란 시간은 높은 장대발을 신은 채 말없이 조용히 걷기만 한다. "그의 머리는 한낮의 빛으로 가득하고 심장은 한밤의 어둠으로 물들어" 있다. 파란 시간은 왜 새벽녘이나 해질녘에 나타나는 것일까. 작가의 상상력은 한 편의 환상적인 동화를 지어내 설명한다.
아주 오랜 옛날, 시간이 낮에서 밤으로 곧장 바뀌던 시절,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은 낮도 밤도 아닌 파란 시간을 쫓아내 버린다. 갈 곳이 없어 떠돌던 파란 시간은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이 서로 싸우는 틈을 타 그 사이로 슬쩍 끼어든다.
그러던 어느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벽 공주가 해 뜨는 저 먼 곳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가 공주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파란 시간은 그날부터 밤마다 까만 새로 변해 새벽 공주를 보러 먼 곳으로 날아갔다가 동틀 무렵 태양 왕이 잠에서 깨기 전에 쏜살같이 달아난다.
낮과 밤의 당당한 위세에 눌려 약하고 수줍은 파란 시간을 안 에르보는 착하고 슬픈 표정의 남자로 그려냈다. 머리엔 골무를 쓰고, 한 손에 작은 책을 들고, 큰 바늘로 웃옷을 여미고 있는 모습이다.
수채화로 그려낸 파란 시간의 풍경 속에 꽃과 나무와 새, 잠자리와 나비는 엷은 베일을 두른 듯 파르스름한 빛 속에 녹아있고, 새벽 공주의 작은 집이 매달려 있는 줄기 끝에 핀 흰 장미꽃은 목화 송이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부풀어 있다. 이 섬세한 그림들은 시적이면서 철학적이기도 한 본문과 어울려 독자로 하여금 '파란 시간'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쉽고 아름답게 설명하는 작가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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