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는 해묵은 논쟁이 하나 있다. 독자 수준이 낮아서 좋은 책은 안 나간다는 주장과, 반대로 출판계가 그간 대중에 영합한 싸구려 책만 양산했기에 독자 수준이 그런 것 아니냐는 반박이 그것이다. 사실 이 논쟁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데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싸움 같아서, 논쟁이라기보다는 푸념처럼 오가는 말들이다. 하지만 양쪽 다 "좋은 책은 안 팔린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말이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비관하지는 마시라. 한국에 출판사가 어디 수십 개요, 독자가 수백 명밖에 없으랴. 어디선가 굳센 의지를 가진 출판사는 여전히 좋은 책을 내고 있고, 양식 있는 독자들은 여전히 그 책들을 소중히 읽고 있다.그런 책의 하나로 소개하고 싶은 것이 까치가 펴낸 '괴델, 에셔, 바흐'이다. 무릇 '좋은 책'의 기준에는 감동, 재미, 실용성, 만듦새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순수한 지적 즐거움도 뺄 수 없다. 책은 실용적이지 않아도 가치가 있다. 인류가 걸어온 지적 발자취에 순수하게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국 역사를 만들고 세상을 바꾼 것은 이런 지적 호기심이 아닌지?
이 책은 퓰리처상에다 영예로운 미국도서대상까지 받았으니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이 바쁜 세상에 아무런 쓸모도 없이 즐거운 지적 탐험의 의도 하나로 이 책이 엮어졌다는 점에서 찬탄을 금치 못하겠다.
내용은 몹시 난해하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크레타 사람이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을 때 나타나는 역설(그 말이 거짓이어도 문제고, 참이어도 문제다)을 둘러싸고 논리학자 괴델이 내린 유명한 불완전성 정리, 바흐가 그의 많은 곡에서 이용했던 푸가와 카논의 자기순환적 조화, '서로 손을 그리는 손들'이라는 판화로 유명한 화가 에셔가 보여준 순환적 세계상, 이들의 공통점을 통해 우리 지식에 숨은 거대한 이념 하나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 이념을 재귀준거(self―reference)라는 말로 표현한다. 세상의 모든 언어적 표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언급할 때면 늘 나타나는 이 논리적 모순은, 기실 우리의 모든 지식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떼낼 수 없는 모순이기도 하다.
저자의 이런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번뜩이는 재치를 넘어 지식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정도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전문가도 아니요, 다만 아마추어적인 독창성과 정열로 근대 지성사의 이 거대한 얼개를 그려내고 있다.
고백하면 나 자신도 이 책의 여러 곳을 건너뛰었다고 실토해야겠다. 시간이 나면 제대로 도전하겠다는 결심만 남긴 채로 말이다. 즐거운 지적 호기심으로 이 책에 한번 도전해보시라. 그리고 이 책을 펴내겠다고 결심한 출판사와 역자, 이 책이 6쇄(!)를 기록하게 만든 이름 모를 독자들에게 칭찬 한번쯤 던져주시라.
/안희곤·세종서적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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