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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언제나 소박하게

입력
2003.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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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인 지음·유은영 옮김 샨티 발행·8,500원'더 많은 물건을 갖는 것보다 더 적은 욕구를 갖는 것이 낫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식을 추구하면 매일 무언가를 얻는다. 그러나 지혜를 추구하면 매일 무언가를 버린다'(노자) 소박과 절제는 동서고금에서 미덕으로 통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아우성치는 물질만능·대량소비 사회에서 눈 감고 귀 닫는 일은 쉽지않다. 문제는 아무리 많이 사 모으고, 많은 걸 갖고 있더라도 더욱 교묘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유혹은 마음 속에 불만을 자극한다는 것.

미국 화가이자 교육자인 존 레인이 쓴 '언제나 소박하게'는 현대 사회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일러주고 있다. 이 책은 짤막한 우화로 시작한다. 고깃배를 세워둔 채 느긋하게 누워있는 어부를 보고 부유한 사업가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왜 고기를 안 잡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 다 잡았소"

"왜 더 잡지 않나요?" "더 잡아서 뭘 하게요?"

"돈을 벌어 모터 달린 배를 사고, 더 깊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더 잡을 수 있잖아요. 또 큰 그물을 사서 고기를 더 잡고, 배를 늘려 선단을 거느리죠. 그러면 나처럼 부자가 될 수 있잖아요." "그 다음엔 뭘 하죠?"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죠"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행복해지려면 더 벌고, 더 모으고, 더 늘려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태도로 현재를 여유 있게 즐기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저자는 과거 위인들의 검소한 삶을 소개한다. 먼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BC469∼BC399). 그의 생업은 조각가였지만 노련한 기술을 갖지도 못했고 이름을 날리지도 못했다. 그저 굶지않을 만큼의 노동을 하면서 남는 시간은 이방인들이나 한가한 계급의 젊은이와 소년들을 모아 대화를 나누었다. 제자 플라톤이 쓴 '대화'는 스승과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또 영국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T.S. 엘리엇(1888∼1965)의 사례도 흥미롭다.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인 그는 평생을 은행원과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며 오전 9시30분에 출근, 5시 30분에 퇴근하는 일과 속에서 '황무지' 등 명작을 남겼다.

이 밖에도 자신의 마당 한 귀퉁이에 탑을 짓고 들어가 살면서 절제를 부르짖었던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1533∼1592)나, 전기도 난로도 수돗물도 없이 살았다는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도 소박한 삶의 전형이다.

그리고 저자는 패스트 푸드와 원스톱 쇼핑 등으로 절약한 시간을 쾌락과 사치를 위해 낭비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무절제한 삶으로 고개를 돌린다. 과거처럼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촛불을 밝히고, 시구를 생각하는 시간 대신에 더욱 자극적이고 표피적인 일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결론은 예나 지금이나 소박한 생활이야말로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라는 것.

그는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영국의 시인 헨리 와튼의 시를 인용하면서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를 통째로 수용하며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고 제안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이지만 역시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도덕교과서 같은 내용을 각종 일화와 교훈적 사례로 풀어 써서 지루하지 않다. 또 문학 역사 과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저작을 인용함으로써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책속의 "소박한 삶" 키워드

소박한 삶을 말하는 책들의 키워드는 느림, 비움, 단순함이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민음사)에서 속도에 중독되어 느림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오늘을 한탄한다.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에서 느림은 무능력이나 게으름이 아니라 행복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의 책으로 르클레르 신부의 '게으름의 찬양'(분도출판사),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이 있다. 한편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현대문학)과 이브 파칼레의 '걷는 행복'(궁리)은 느림을 즐기는 한 형식으로서의 걷기에 주목한다.

비움이나 단순함은 나눔과 절제에 관한 것인데, 종종 자연이나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연결되곤 한다. 전우익의 '사람이 뭔데'(현암사),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보리), 소로우의 '월든'(이레),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녹색평론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비울수록 넉넉해지고 단순할수록 풍요로워지는 삶의 구체적 모습을 이 책들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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