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133조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제공한 자에 대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뇌물수수자의 형량(5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버금가는 중형을 매김으로써 공직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검찰은 그러나 현대 비자금 수수사건과 관련, 권노갑씨와 박지원씨에게 돈을 주기로 모의하고 전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 대해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은 "최고책임자인 정몽헌 회장이 고인이 된 터에 하수인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건 당시 현대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라인에 있었던 이씨는 단순한 돈 전달자가 아니라 정회장과 함께 뇌물공여죄의 공범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평가다. 심부름만 했다는 이씨의 소명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증뢰물전달죄'에 해당돼 처벌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익치 봐주기'의 진짜 이유는 정 회장이 숨지고 권, 박씨의 비자금관리인인 김영완씨의 귀국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할 유일한 증인이 이씨라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짐작된다. 즉 결정적 진술자에 대해 봐주는 이른바 '수사 흥정(플리바겐)'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경유착 단절'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시작된 이번 수사에서 범죄의 한 축인 뇌물공여자를 문제삼지 않는 것은 수사명분에도, 법 논리에도 맞지 않다. 열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되듯 도둑을 잡기위해 또 다른 도둑의 죄를 덮는 수사 또한 정의가 아님을 검찰은 알아야 한다.
노원명 사회부 기자narzi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