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 지음 작가정신 발행·7,900원'내 어렸을 적 친구는 앵무새들을 키우며 살았네. 울타리도 지붕도 없는 이상한 집에서.' 백민석(32)씨의 중편소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아파트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아이들 중 하나인 소설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한갓진 시골에선 잠시라도 살아본 적이 없다. 농가에서 키우는 황소를 본 횟수보다 동물원에서 물소를 본 횟수가 더 많다.
차를 타고 가다가다도 두엄의 썩은내가 쏟아져 들어오면 차창을 얼른 올린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조용한 야외로 나가는 게 아니라 소란스런 나이트클럽으로 간다. 맥주 두 병, 댄스 음악, 밴드 생음악. 이런 것들 속에서 머리가 맑아진다.
남자는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는 남자의 성(城)이다. 남자가 짓는 노래 가사처럼 '함께 사는 사람'도 없고 '울타리도 지붕도 없는 이상한'성이다. 대중가요 작사가인 남자의 동거인은 여자 인형이다. 남자가 걸음마를 채 익히기도 전부터 한 베개에서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잤다. 지금껏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인형과 함께 있는 한 남자는 안전하다.
자기만의 세계를 아주 튼튼하게 쌓은 이런 아파트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놀랍도록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묘하게 쓸쓸하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여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백씨의 소설은 이런 스케치에서 그치지 않고 불안하게나마 '세계 바깥'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는 데서 의미를 갖는다.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인형이 있어 외롭지 않은 남자에게 어느날 편지가 날아든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는 곳에서 온 편지를 들고 남자는 인형과 함께 발신인을 찾아나선다. 농장은 30년 전 사라졌고 아이들을 데리고 살던 여자는 굶어 죽었다. 아이들도 없어졌다. 하나하나 알게 된 사실이 어디에선가 듣고 겪은 듯하면서 우울한 느낌이다.
동료 작곡가가 자살한 뒤 아파트 남자는 농장터로 가 인형을 파묻는다. '이 택시가 나를 태우고 영원히 달려주었으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소설은 맺어지지만, 남자가 택시를 탄 것은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자가, 어쩌면 작가가 성 밖으로 한걸음 나왔다는 의미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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