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9월19일 러시아의 물리학자 겸 기술자 콘스탄틴 에두아르도비치 치올코프스키가 칼루가에서 작고했다. 78세였다. 치올코프스키는 우주 비행 이론의 선구자다. 과학 소설가가 아닌 과학기술자로서 우주 비행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그의 당대까지 매우 드물었다. 치올코프스키는 우주 여행에 대한 과학 소설가들의 상상을 진지한 탐구의 영역으로 끌어온 거의 첫 이론가라고 할 만하다.10세에 걸린 성홍열의 후유증으로 청각을 잃게 된 치올코프스키는 소리로부터의 단절감을 우주 비행에 대한 연구로 메웠다. 그가 일생 동안 대학 제도 바깥에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의 과학적 상상력을 도왔다. 거의 독학으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가 된 치올코프스키는 "태양이 그 에너지를 다 써버렸을 때는 그 곁을 떠나 새로 에너지를 뿜기 시작한 젊은 별을 찾아가는 것이 옳다"는 과학소설적 상상력에 떠밀려 우주 여행의 방도를 탐구했고, 그의 연구는 1898년 '로켓에 의한 우주 공간 탐구'라는 논문으로 응결됐다. 치올코프스키는 이 논문에서 로켓의 이상적인 도달 속도는 가스의 분출 속도에 비례하고, 로켓 발사 때와 연소 종료 때의 무게의 비에 관련된다는 치올코프스키식(式)을 제시했다. 그는 또 가스의 분출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액체 추진제를 쓰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도 밝혔다.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170km 떨어진 도시 칼루가는 치올코프스키가 그 곳에 살며 연구에 몰두한 덕에 우주과학사에 이름을 새겼다. 그가 생전에 살았던 집은 우주비행 박물관으로 고쳐져 보존되고 있다. 1957년은 치올코프스키가 태어난 지 1백년이 되는 해였다. 옛 소련 정부는 바로 그 해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발사해 우주비행 이론의 선구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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