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도, 거리 패션을 봐도 온통 만들어진 화려함이 눈길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달리 화려함은 곧 싫증난다. 이번 주말엔 소박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보자.충남 서산으로 향한다. 마애삼존불, 개심사, 해미읍성 등이 반긴다. 모두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한국의 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유산들이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있어 여행길도 힘들지 않다.
출발
명성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던 서해안 관광명소로의 여행이 수월해졌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터. 아찔한 즐거움에 잠시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행담도휴게소에서 한잔 커피를 마시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서해대교의 위용이 압권이다. 당진, 서산을 지나 해미IC로 빠져 나간다. 이전에는 2∼3시간 이상 걸리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1시간30분이면 족하다.
해미읍성
첫번째 목적지다. 조선 선종 22년(1491)에 세워졌다.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다. 사적 116호. 성곽 높이가 5m, 둘레는 1,160m다. 성내 면적이 6만평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성은 산위에 있는 것이 상식. 하지만 이 곳은 평지다.
마을 중심을 마치 돌담처럼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다. 담벽을 따라 나있는 넝쿨이 소담스럽다. 해미(海美)라는 이름 만큼이나 아기자기하다. 원래는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가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외침을 막기 위한 성이었지만 미관을 고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병사영 군관으로 부임, 1년 가량 지냈으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된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외형적인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 아픈 과거도 있다. 19세기 천주교박해 당시 3,000명에 달하는 천주교신자가 이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600년 된 회화나무에는 당시 순교자에게 고문을 가하면서 생긴 생채기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041)660-2540
개심사
개심사로 가는 길은 이색적이다. 해미읍성에서 647번 지방도를 타고 운산방면으로 가다 보면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라고 명명된 20㎢에 달하는 넓은 목초지를 만난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니…. 여기에 3,000여마리의 소떼가 뛰노는 모습이 더해지면 유럽의 어느 목장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잠시 이국적인 풍광을 감상하면서 신창저수지를 지나면 개심사에 도착한다.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651)에 혜감국사가 창건했다. 입구에서 절까지 계단이 200개다. 올라가는 동안 속세의 마음(心)을 비우라(開)고 지어진 이름인가 보다. 절에 도착하면 오른편으로 아담한 연못에 떠있는 수련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자기하다. 이 절의 분위기를 가늠케한다. 조선시대 대표적 맞배지붕이라 불리는 다포식(多包式) 건축양식인 대웅전(보물143호), 동종, 심검당 등은 화려하지 않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운치가 있다. (041)688-2256
보원사지
개심사에서 나와 647번 지방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618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서산마애삼존불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이 길로 접어들면 고풍저수지를 지나 용현계곡에 다다른다. 이곳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따라 1㎞ 들어가면 보원사지와 만난다. 사적 316호. 고려초에 창건한 사찰이지만 지금은 터와 함께 일부 유적들만 남아있다. 하지만 유적들의 면면으로 보아 절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우선 입구에 우뚝 선 당간지주(보물 103호)가 눈에 띈다. 불교행사때 기를 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높이 4.2m. 여기서 절터까지 500m 정도 걸어야 한다. 석조(보물 102호), 5층석탑(보물 104호), 법인국사 보승탑(보물 105호), 법인국사 보승비(106호) 등이 있다. (041)660-2226
점심
마애삼존불, 보원사지는 모두 용현계곡에 접해있다. 3㎞에 이르는 계곡으로 삼림욕장이 조성돼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의 한철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민물매운탕, 우죽탕, 꽃게탕, 훈제바비큐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용현식당(041-663-4090), 향토마당(664-8894), 한방백숙동원관광농장(669-0120∼1), 뜨근이집(669-6512), 삼기식당(665-5392) 등.
서산마애삼존불상
식사와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면 이번 여행의 백미인 마애삼존불로 향한다. 암벽에 새긴 불상이다. 국내에 산재한 수많은 마애불중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국보 84호. 계단을 100개 정도 올라야 한다. 힘들지는 않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다시 100m 정도 가면 전각이 나오고 이 안에 세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가 여래입상, 오른쪽에는 반가사유상, 왼쪽은 보살입상이다. 6세기 중엽 백제의 작품으로 백제의 미소라고 불린다.
왜 그럴까.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위엄있는 부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영락없는 시골 촌부의 얼굴이다.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더 놀라운 것은 빛의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등을 들고 해가 가는 방향으로 움직여보면 정말로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웃음이 사라진 현대인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걸작이다. (041)660-2538
귀가
귀가길은 다소 고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마애삼존불의 웃음을 생각한다면 스트레스가 덜 쌓이리라. 혹 운이 좋으면 서쪽 바다로 기우는 해와 나란히 집으로 올 수도 있으니 여유로움을 잃지 말자.
/서산=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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