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18일 현행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건전하고 생산적인 기업 투자까지 막는다는 용역 보고서를 발표, 파문이 일고 있다. 재경부가 비록 용역보고서 형식으로 밝히기는 했지만 이는 사실상 출자규제를 폐지하자는 것으로, 출자규제의 골간은 유지한다는 참여정부의 기존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특히 재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기관을 선정, 대응논리를 발표하도록 함으로써 정부 부처간 정면 대결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는 출자규제 개편방향에 대해 이달말까지 최종결론을 내린다는 계획이지만 공정위와 시민단체, 재경부와 재계 등의 입장이 워낙 엇갈려, 출자규제가 어떻게 개편될지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재경부는 이날 서울대 기업경쟁력연구센터에 발주한 용역 보고서를 통해 "출자규제의 획일성으로 인해 전략적 제휴, 구조조정, 위험분산 투자 등 기업의 가치를 높이려는 건전하고 생산적 목적의 투자활동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현행 출자규제를 정면 비판했다. 보고서는 출자규제를 만들 당시 목표였던 '재벌의 전문화 및 핵심역량 강화'는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고, '계열사간 동반 부실화 방지' 등은 채무보증제한제도 등 다른 규제를 통해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다만 현행 출자규제는 '지배주주의 실질 소유권을 초과하는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만 규제하는 선에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지배주주가 실질 소유권보다 의결권을 얼마나 더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의결권승수(의결권/소유권)를 기준으로, 소유권과 의결권간 괴리가 적은(승수가 낮은) 기업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출자제한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의결권 승수가 1.5이하인 기업은 현행 출자한도인 순자산의 25%를 100%로, 1.25이하인 기업은 150%로 완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재벌총수가 한 기업에 대해 자기지분 5%, 계열사 지분 15% 등 20%의 지분으로 총 3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면 승수는 1.5가 된다. 예를 들어 순자산이 24조원인 삼성전자의 경우 의결권승수를 1.5로 맞추면 지금은 6조원이 넘는 출자는 규제대상이지만, 앞으로는 24조원까지 자유롭게 출자할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금호그룹내 지주회사이지만, 출자제한을 받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이나, 동부그룹내 동부건설·동부제강 등이 추가 출자여력이 확보된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또 이처럼 출자규제를 전면 개편하는 대신, 적용제외·예외조항 등은 폐지하고 현행 지주회사 요건도 대폭 완화해, 현행 재벌체제를 지주회사 체제로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발주한 출자총액규제 관련 용역 결과를 19일 개최되는 TF에서 공개, 재경부와 재계 논리를 반박한다는 계획.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의결권승수를 기준으로 현행 출자규제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면서도 "이 같은 지표를 기준으로 규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현행 출자규제를 더 완화할 경우 한자릿수의 적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는 재벌의 황제식 소유·지배 구조나, 무분별한 출자로 인한 선단식 경영의 폐해, 이로 인한 재벌의 공동부실화 문제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 4월 1일 현재 11대 재벌의 총수 지분율 평균은 1.5%, 친인척·임원 등 특수관계인 지분은 2.6% 등으로 총수일가가 4.1%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또 재벌의 출자 가운데 51%가 이미 적용제외·예외인정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또한 신산업 분야 등 소위 '건전한·생산적 투자'보다는 지배력 확장에 이용되고 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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