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의 피해가 컸던 것은 초속 50∼60m에 달하는 강풍에 해일과 폭우가 겹쳤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해안지역을 초토화시킨 해일은 현장을 피하는 것 밖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을 만큼 그 위력이 엄청났다. 육중한 컨테이너 크레인을 장난감처럼 구겨버리고 곳곳을 암흑세계로 만든 것은 강풍이었지만 그 외 대부분의 피해는 물 때문이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뒤끝에 남쪽지방을 휩쓴 해일과 폭우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삼켜버렸다. 태풍 매미는 국민들의 가슴에 물에 대한 외경심을 깊이 각인시켰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동식물 구분 없이 무게의 70∼80%가 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인간의 몸 역시 성인기준으로 70%가 물이다. 지구 표면에서 물이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물은 곧 생명'이라는 주장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물과 떼어놓고 상상할 수 없다. 문명의 발상지가 한결같이 강가이며, 산업도 강가에서 발달하고, 도시가 바다나 강가에 형성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유엔이 1999년 물의 날 표어로 정한 '모두 하류에 산다(Everyone lives downstream)'가 실감나는 까닭이다.
■ 일찍이 노자(老子)는 물의 성질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삶의 지표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고 하여 물 흐르듯 하는 삶을 권유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것을 이기는 힘, 막히면 돌아가고 부딪치면 흩어지면서 환경에 순응하는 적응력, 항상 낮은 데로 흐르는 겸손함, 더러움을 피하지 않고 함께 뒤섞여 자신을 희생해 더러움을 없애는 정화력, 구름 안개 비 얼음으로 변하면서도 결코 본성은 잃지 않는 물의 속성을 사람이 본받아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인식했다.
■ 에모토 마사루(江本 勝)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보여주듯 물의 신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어렵게 물의 결정체 촬영에 성공하고 그 결정체의 형상이 외부에서 들려주는 말이나 음악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그는 물은 곧 생명이며 우주라고 단언한다. 46억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온 물은 순환을 거듭하며 지구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으며 이 물이 갖고 있는 정보를 읽을 수만 있다면 우주와 대자연을 알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태풍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겐 물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막히겠지만 매미의 내습을 계기로 다시 한번 물의 교훈을 되새겨보게 된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