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4차 개방계획이 발표됐다. 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 분야를 제외하고 내년부터 완전히 빗장을 푼다는 내용이다. 이로써 한일 양국이 1998년 10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공동선언하면서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다.이번 발표에서는 1,2,3차 개방 때와는 사뭇 다른 기류가 느껴진다. 앞서 1,2,3차 발표 때는 왜색, 저질문화, 민족감정의 문제가 주로 거론되었다. 이런 수세적 개방의 태도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상호주의적 태도, 산업적 자신감 등을 보였다. 우리 대중문화의 일본 진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 그 동안의 개방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중문화 산업이 큰 타격을 받지 않았음을 정부는 강조했다.
개방 문제를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 고민할 때가 되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일본 대중문화 유입을 문화적 차원에서 사고할 것을 전향적으로 제안한 셈이다. 대중문화 산업의 위축과 피해 차원에서 개방 논의를 할 것이 아니라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 증진, 국내 수용자들의 문화적 메뉴의 다양화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국내 문화산업의 성장, 국민의 문화적 역량의 성숙도 등을 감안해보면 이번 개방발표 시기와 개방범위는 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개방을 다루는 태도가 이전에 비해 한층 성숙해진 것도 평가 받을만한 대목이다. 이번 4차 발표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차분한 반응도 개방 내용과 범위의 적절성과 성숙한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스크린쿼터 문제, 외국자본의 방송 진출 문제 등 문화개방정책은 아직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남은 문화개방 문제를 지혜롭게 풀 수 있도록 문화외교, 문화정책과 관련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 정부의 문화외교와 관련된 것이다. 3차 개방이후 일본 교과서 문제와 신사참배 문제 등이 걸려 한동안 개방 논의가 중단됐다. 정부는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더 이상 개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점에서 우리 정부는 이번에 스스로 원칙을 어긴 셈이다.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관성이 아쉬운 대목이다. 스크린쿼터 문제와 같이 아직 남아 있는 부분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둘째, 이번 발표에서 보여준 문화 다양성 논의를 문화정책의 주요 기조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 해석하는 전향적 태도는 아시아 다른 지역과의 대중문화 교류에도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대중문화 교류를 통한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 등과 같은 보다 큰 차원에서의 문화정책 논의와 실행도 이뤄져야 하겠다.
셋째, 이번 개방 발표를 계기로 국내 문화산업의 시장합리화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아직 약한 고리로 남아 있는 저작권, 유통, 공정거래 부분 등을 정비해 시장 합리화를 꾀해야 한다. 시장 합리화를 통해 체질을 강화하면서 창작 의욕이 감소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애초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민족감정과 왜색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제 논의의 축이 문화산업으로 이동되었다. 이는 사실 상당히 진전된 모습이다. 하지만 이에 만족할 수만은 없다. 이번 개방을 계기로 논의와 정책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려야 한다.
새로운 아시아 문화권 형성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상호 이해와 공동 운명체 인식 증대를 도모하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 같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들어있는 이번 4차 개방이 새로운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원 용 진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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