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밍, 오랜만에 불러 보는구나.널 처음 만난 게 벌써 25년 전의 일이구나. 내가 열 두 살 때였지. 태어난 지 한달 밖에 되지 않은 너는 짧고 하얀 털, 깊고 검은 눈망울을 가진 예쁜 강아지였지. 너를 아버지가 데리고 왔을 때 난 기뻐서 비명을 질렀지. 우리 가족은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궁리 끝에 차밍(charming)이라고 했지. 매력적이란 뜻인데, 너에게 딱 맞는 이름이었거든.
너는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지. 6개월쯤 지났을까. 네가 짝을 찾는 눈치가 역력하더구나. 바깥을 내다 보고 옆 집의 개를 만나면 킁킁거렸지. 그래서 가족 회의 끝에 너를 서울 아현동의 짝짓기 전문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지.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잔디 밭에 하얀 색깔의 무엇인가가 꼼지락 거리고 있더구나. 새끼 쥐가 아닐까 하고 다가가 보니 널 꼭 닮은 강아지 세마리였어. 너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인지 강아지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대기만 했지. 1년이 지나 짝짓기를 다시 했고, 너는 다섯 마리의 예쁜 강아지들을 낳았지. 아버지는 손수 탯줄을 끊어주고 욕실 옆에 너의 집을 마련하여 산후 조리를 도왔지.
차밍, 넌 나와 단짝이었어. 나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지. 내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고 옥상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있으면 넌 혀를 날름 거리며 나를 위로했지. 내가 피아노를 치면 옆에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깡총거렸고, 내가 집에 돌아오면 넌 꼬리를 치며 재빠르게 뛰어와 나의 팔에 안겼지. 해프닝도 있었지. 어느 날 학교에 가려고 신발을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더라. 너의 보금자리를 살폈더니 신발이 거기에 있는 거야. 난 화가 나서 너를 쥐어박았지.
그런데 알고 보니 넌 내가 학교에 가는 것이 싫었던 거야. 하루 종일 같이 놀아달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지. 네가 무서운 밤길에도 함께 따라다니는 보디가드 역할도 해줄 땐 정말 듬직했어.
그런데 끔찍한 일이 생겼지.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된 너를 안고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왔지. 교통사고를 당한 너는 가냘픈 몸을 파르르 떨더구나. 그게 너의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이었지. 우리 가족과 8년간 함께 살면서 친구가 되어 준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구나. 비록 사람과 개로 만났지만 전생에 우린 친구 사이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차밍, 교통사고 없는 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지? 안녕.
/hjj92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