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한 순간이라도 만화가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꿈의 옹달샘이면서 청소년에게는 숨막힌 학교생활 중 작은 일탈을 맛볼 수 있게 해주며 어른들에게는 일상의 작은 쉼표를 찍어주는 만화.손끝으로 무한한 꿈의 세계를 창조하는 만화가 김종한(36)씨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인기 만화작가이면서 오토바이 레이서로, 여행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김씨의 삶은 넉넉하고 따뜻한 그의 만화와 닮았다.
'만화 속에 담긴 삶의 단면들'
용감한 짓돗개와 소년 백범이의 활약을 그린 '파이팅 바람이', 비행기 만화 '플라잉 타이거',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들을 벌주는 동물탐정 이야기 '에이(A)'…. 1991년 만화 잡지 보물섬에 단편 '환상여행'으로 데뷔한 후 김씨가 그린 만화는 단행본만 30여권에 달한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했지만 전공을 하기에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그림이라 만화를 그려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고3때인 1983년 허영만 선생님께 문하생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직접 찾아 뵈었을 때 허 선생님께서 '저쪽 자리에 앉아라'고 하며 받아주시더군요."
요즘은 신인가수의 노래 하나를 만화로 만들어주는 작업에 재미를 들여 몇몇 신인가수 노래에 예쁜 옷을 입혔다. "만화를 그리는데 거창한 철학 같은 걸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생계 수단 정도라고나 할까요. 제가 좋아하고 잘 아는 것들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붙여 사람들이 즐겁게 봐주면 더없이 좋은 거죠." 낙엽 타는 향기 같은 넉넉한 웃음을 지닌 그다운 대답이다. 아직 싱글인 김씨는 앞으로 '퀴퀴한 독신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바이크 레이서로 세계를 누비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멋진 BMW 바이크(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다. 작년 봄에 구입한 R1100S로 웬만한 중형차 한대 값과 맞먹는다고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앞마당에 조각마냥 바이크 두 대가 눈에 띈다. "R1100S가 장거리 여행과 스포츠가 동시에 가능한 기종이라면 이 놈은 전문 레이싱을 위한 바이크고 이건 야마하 YMFR1인데…" 설명이 이어진다.
바이크를 생활필수품이라고 일컫는 김씨는 프로에 가까운 오토바이 마니아다. 1999년 한국모터사이클연맹(KMF)에서 주최하는 'KMF 로드레이스'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BMW 박서 트로피 2003', 미국 '데이코나 200마일 내구 레이스', 일본 '스즈카 8시간 내구 레이스' 등 전세계를 누비며 바이크 실력을 뽐내고 있다
"허영만 선생님 밑에 함께 있던 만화가 박흥용 선배가 바이크를 즐기는 것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1990년부터 타기 시작했어요. 바이크는 가장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일 뿐 아니라 주차도 간편해서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아무리 오래 타도 익혀야 할 기술이 무한하고 묘한 스릴과 재미가 느껴진다는 거죠. 놀이기구를 탈 때 느끼는 희열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박흥용씨는 현재 한국일보에 인기만화 '호두나무 왼쪽길로'를 연재하고 있다.)
술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
'불술 3병을 사서 자루에 넣고 나서는데 할머니는 그런 내게 한동안 손을 흔드셨다. 삼척항의 짠 바다 내음과 빗속을 뚫고 넘는 한계령에서도 넉넉한 인정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김종한씨가 월간 '모터바이크'에 2002년 7월부터 연재 중인 '바이크로 떠나는 술맛 기행'의 한 구절이다. 두메 산골의 농가에서 할머니 혼자 빚어낸 구수한 술맛은 아무리 오랜 여독이라도 말끔히 씻어준다. 기억에 남는 술은 경북 영주 막걸리와 충청도 계룡산의 계룡백일주. 우리나라 전통술은 대부분 약재를 넣어 건강을 생각하고 장기숙성을 않는 것이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마감 때면 밤을 새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폭음을 즐기던 김씨는 작년부터 건강을 생각해 와인으로 주종(酒種)을 바꿨다. 하루 한두잔씩 마시면 몸에도 좋을 뿐더러 단계별로 맛을 알아가며 공부하는 과정이 독특한 즐거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와인은 주로 이태원 '젤' 서초동 '뜨루드뱅' 포이동 '크로스비' 등에서 구입한다. 일반인이 무난히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묵직하고 깊은 맛의 1997년 부르고뉴산 '제브리 샴베리텡(Gevrey Chambertin)'과 가볍지만 균형 잡힌 맛이 매력인 2001년 칠레산 '카시제로 까베르네 쇼비뇽(Casillero Cabernet Sauvignon)'을 추천했다.
진돗개 '바람이'와 '황대'의 추억
김종한씨의 대표작 '파이팅 바람이'의 주인공인 진돗개 바람이는 김씨가 실제로 기르던 개의 이름이다. '국견협회'에서 진돗개 심사를 보조했던 인연으로 1991년부터 '바람이'와 '황대'를 키우기 시작했다. 김씨는 '두 친구 다 지금곁에 없다'고 말하며 가슴 아픈 표정이다. 바람이는 1997년에 도둑맞았고 10년 정도 키우던 황대는 작년 가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지금은 적적한 마음을 달래라며 후배가 잠시 데려다 놓은 '예진'이만 김씨의 마당을 지키고 있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온 것도 모두 개 때문이었다. '파이팅 바람이'를 그리던 1993년만 해도 정원에는 진돗개 17마리가 함께 생활했다. 밥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만화를 그리다 또 나가서 밥 주고 배설물을 치우면 하루가 끝나는 생활이었지만 전혀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동물이 그렇겠지만 특히 개는 보고만 있어도 정겹고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요즘은 개에게 인격까지 부여하며 아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주인이라며 반겨주는 모습이 가장 사랑스럽더군요. 황대를 잃은 아픔에서 자유로워지고 좀 더 좋은 환경이 구비된 집으로 이사가면 다시 진돗개를 키워볼 생각입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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