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상처가 있다'는 말은 흔히 멜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로 들린다. 아니면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헤어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조심스럽게 하는 이야기로 받아 들여질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그런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아닌 진짜 '사랑의 상처'를 보았다. 업무상 알게 된 B씨와 S씨에 관한 이야기이다.두 사람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간경화 및 간암으로 투병 중인 B씨는 담당 의사로부터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S씨는 선배를 위해 흔쾌히 자신의 간 일부를 기증했다.
S씨는 내게 수술 부위를 직접 보여주었다. 배 한가운데 열 십자 모양으로 난 큰 상처를 보니 '수술이 장난이 아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언론을 통해 간 또는 신장을 이식해 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대단하다고만 여겼지 자신의 간을 기증하기까지의 고민과 수술에 따른 고통 등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S씨를 보니 신체의 일부를 기증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S씨는 수년 전부터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것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지만, 자신의 몸 일부를 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 사랑을 몸소 실천하게 되어 오히려 흐뭇하다고 했다. 아울러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법의 차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순간 혈육이나 부부지간이 아니면 선뜻 장기를 주기 아깝다고 생각했던 나의 이기심이 부끄러웠다. 또 생각은 하면서도 갖은 핑계를 대고 실천을 미루어 왔던 일들이 떠올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S씨를 만나고 나서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스스로 사랑의 상처를 만들어 보기로. S씨처럼 커다란 사랑의 상처를 낼만한 용기는 부끄럽지만 아직 없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작은 사랑의 상처를 낼 수 있는 기회는 많은 것 같다. 헌혈 후 남는 팔뚝의 주사바늘 자국일 수도 있고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에게 내가 마시려고 산 음료수를 주고 느끼는 갈증일 수도 있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는 것처럼 사랑의 울타리도 그렇게 형성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상처 하나쯤 만들라고 권유하고 싶다. 요즘처럼 살기 힘든 세상일수록 사랑의 상처를 만드는 이들이 있어야 우리 사회는 더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그리고 살 맛 나는 세상이란, 바로 누군가 나를 위해 사랑의 상처를 입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희봉·경기 구리시 교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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