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이라크戰과 미완의 승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이라크戰과 미완의 승리

입력
2003.09.18 00:00
0 0

지난 5월 1일 부시 미 대통령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에이브러험 링컨호에서 함상 연설을 통해 "이제 이라크에서의 주요 전투는 종료되었다. 미국과 연합군은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부시의 승전보는 이제 하나의 허상으로 나타나고 있다.이라크 전은 재래식 전쟁에서 저강도 분쟁으로 그 성격이 변질되었고 미군 사상자 수는 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 국민들 사이에 베트남전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 설마 하던 미국의 전투병력 파견 요청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미완의 승리란 역설적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왜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무엇보다 명분 없는 전쟁이 가져온 필연적 귀결이라 하겠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1차적 이유는 대량살상 무기였다. 그러나 엄청난 현상금을 내걸고 지난 5개월 동안 이라크를 샅샅이 뒤져도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라크를 친 두 번째 이유는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 테러조직과의 연계였다. 그러나 이 역시 허구로 드러나고 말았다. 오히려 알 카에다 조직이 사담 후세인을 반 이슬람적 원흉으로 간주, 최우선적 타도 대상으로 분류해 놓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오도된 전쟁 명분 때문에 이라크에 대한 전후 평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현지사정에 대한 몰이해 역시 또 다른 변수로 작용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은 승전의 여세를 몰아 사담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 부시는 자제했다.

왜냐하면 국무부 중심의 중동지역 전문가들이 사담 후세인의 급격한 제거가 이라크의 해체와 무정부 상태, 그리고 걸프 지역의 힘의 공백 사태를 초래해 궁극적으로 이 지역의 전략적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정책 판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부시는 이러한 정책판단을 수용함으로써 승리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시 현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결정하는 과정에 있어 중동지역 전문가들보다는 반(反) 확산 전문가들의 견해를 더욱 중요시했다. 특히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파이스 국방부 차관, 리차드 펄 국방자문위원장 등 친 이스라엘적 신보수주의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흥미 있는 것은 이들 모두 부시 1기 행정부의 국방부 고위 관료로 봉직하면서 이라크 침공을 통한 후세인 제거를 강력히 주장했던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그 때 채택되지 않은 정책을 부시 2기에 와서 실현시켰지만 지역적 맥락을 간과한 일방주의 정책때문에 미완의 승리란 고배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절대주의에 기초한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또한 화근을 제공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현실주의와 국제주의, 두 축에서 대외정책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전통적 외교노선에서 벗어나 선악의 이분법에 따른 도덕적 절대주의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그리고 선악의 기준은 다분히 유태, 기독교 전통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도덕적 절대주의는 패권적 일방주의를 정당화시켰고, 이는 이라크 전쟁을 문명충돌의 양상으로 비화시키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점령군이 가져다 준 해방과 자유를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구속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깔려있는 반미정서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어쩌면 지금 미국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포용과 설득의 외교, 그리고 국제공조를 통해 현 사태의 조기 수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 정 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