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무용가 최승희(1911∼1969)가 다시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해방 후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심취한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한 최승희는 1967년 북한에서 '반혁명 분자'로 숙청당하면서 남과 북에서 동시에 잊혀졌다. 90년대 들어 정병호 중앙대학교 명예교수가 '춤추는 최승희' 등을 저술하는 등 활발한 재조명 작업을 펼친 끝에 비로소 최승희는 대중적 스타로 되살아났다. 동양적이고도 독창적인 그의 춤은 서구에서는 '동양의 진주', '한국의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전설적인 그의 춤은 분단의 비극 때문에 전승이 끊겼고, 월북 이후의 삶도 베일에 싸여 있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최승희의 무용을 계승했다는 무용가 백향주(28)가 최승희의 춤을 선보이고, 극단 미추는 그의 월북 이후의 삶을 뮤지컬에 담는다.최승희 춤의 계승자 백향주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총련계 재일동포 4세인 백향주는 정병호 명예교수가 발굴한 무용수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그가 98년 6월의 첫 내한공연에서 선보인 '관음보살무' 등 최승희의 춤은 '최승희의 재래'라는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올 초 서울에 정착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대학원) 과정에서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는 그가 국내 활동 이후 처음으로 최승희의 춤을 펼친다. 24일 오후 7시30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28일 오후 6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2003 백향주 무용공연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서…'라는 부제가 의미심장하다.
백향주는 북한 금강산가극단의 무용수였던 백흥천의 딸이다. 8세 때 조선민속무용을 배웠고 93년 베이징 창작무용콩쿠르 1위 등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으며 그 동안 도쿄 홍콩 LA 등지에서 많은 공연을 가졌다. 91년 평양에 간 후 8년 간 최승희의 수제자이자 만수대예술단 무용창작가인 김해춘에게 최승희의 '초립동' '무당춤' 등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170㎝의 장신에 중성적 이미지였던 최승희에 비해 여성적인 춤"이라고 백향주를 평한다. 또 전통 무용수들은 필수적으로 최승희의 동작을 익히는 북한에서도 최승희의 숙청 후 그의 춤이 제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백씨도 여러 차례 "최승희 춤의 답습이 아니라 재창조"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어 이번 공연에서 그 성과를 엿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02)3464―4998
김성녀 주연의 뮤지컬 '최승희'
백향주가 최승희의 춤을 선보인다면 극단 미추의 뮤지컬 '최승희'는 45년 일제 때 위문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친일예술가로 몰려 월북한 시절을 중심으로 최승희의 삶을 그린다. 최승희를 주제로 한 뮤지컬은 처음이다. 예술가 최승희의 모습보다는 남편인 안막과의 만남, 딸 안성희와의 모성적 갈등 등 인간 최승희의 모습을 부각한다. 연출가인 손진책은 전설적 예술가의 신격화와 일상적 관점 사이에 균형을 유지,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삶과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함께 엮어낸다. 최승희 삶의 후반기를 다룬 이 뮤지컬에서는 연출가의 부인 김성녀(52)씨가 최승희 역을 맡는다. 26일부터 10월12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반주는 미추관현악단, 작곡은 조석연. (02)747―5161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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