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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드라마 "요조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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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드라마 "요조숙녀"

입력
200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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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관계를 다룬 드라마는 마치 '각본이 있는' 스포츠 게임 같다. 서로 대결하는 두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이 승리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다면 다른 한 사람은 패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와 다른 점이라면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드라마는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과정이 필요하다. 과정이 흥미진진해야 결과도 재미있을 수 있다.그 점에서 본다면 SBS 수목드라마 '요조숙녀'(사진)는 실패한 게임이다. 이 드라마에서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민경(김희선)의 독특한 캐릭터다. 민경은 돈을 사랑하는 여자이고, 그래서 돈 많은 남자와 '당당하게' 결혼할 수 있는 여자다. 다른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처럼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요조숙녀'에서 영호(고수)의 상대는 재벌2세 동규(손창민)가 아니라 민경의 가치관 그 자체이고, 그래서 게임의 난이도는 꽤 높다. 영호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민경의 생각을 바꿔놓을 것인가. 이 드라마의 재미는 바로 거기서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요조숙녀'는 드라마 중반부터 게임의 내용을 바꿔버렸다. 알고 보니 민경은 보석으로 만든 불가사리 목걸이보다 몇 천 원짜리 실제 불가사리에 더 감동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닌 여자였고, 영호의 옛 사랑이 민경의 쌍둥이 언니였다는 '엄청난 우연'도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지자 "거짓말보다 가난한 게 더 나쁘다"고 외치던 민경은 기다렸다는 듯 별 볼 일 없는 영호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민경은 온갖 오해를 감수하고 영호와 함께 살고, 때론 영호를 위해 자신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임의 난이도는 점점 떨어지고, 심지어 영호는 말만 채권자이지 실상은 후원자인 왕 회장(이순재)에 의해 대기업의 예비 후계자로 지목 받는다. 한쪽 편에 '어드밴티지 룰'까지 주는 것이다.

이로써 '요조숙녀'는 '영호 대 민경'에서 '영호 대 동규'로 슬그머니 게임의 구도가 바뀌고, 내용도 매우 단순해진다. 영호는 후계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동규는 악역을 맡아 영호를 괴롭힌다. 민경의 독특한 캐릭터가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는 어려운 시합이 선악 대결이라는 손쉬운 게임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결과는 뻔하다. 민경은 이제 돈이냐 사랑이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돈도 많고 자신이 사랑도 하는 남자에게 가면 될 뿐이다. 보기 드물게 독특한 개성을 가질 수 있었던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승자'가 된 남성의 '차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연히 동거하는 남녀, 선악 구도, 그리고 회사에서의 성공. 이것은 '요조숙녀'가 일본 드라마 '야마토나데시코'의 리메이크라기보다는 각색자인 이희명 작가의 히트작 '미스터Q' '토마토' 등에서 성별만 바꾼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미 성공한 게임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썼으니 게임을 진행시키기도 쉽고, 원하는 결과에 과정을 끼워 맞추기도 쉽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합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점점 지루해지고 짜증이 난다. 이렇게 가다가는 아예 경기장 밖으로 뛰쳐나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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