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들,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에게는 돈을 뜯겼을 거야!" 양심의 가책은커녕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제비족 상두(비) 앞에 10년 전 첫사랑 은환(공효진)이 나타난다. 상두는 그녀 때문에 소년원에 가고 파양(破養)을 당해 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아픔도 잊은 채 지독한 사랑에 빠져든다.KBS2 월화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극본 이경희, 연출 이형민)에서 공효진(23)이 맡은 수학교사 여주인공 은환은 '나쁜 남자'에게 '착한 사랑'을 일깨우는 '구원의 여인' 같은 존재다.
8개월 전이었다면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을지 모른다. 영화 '여고괴담2'의 문제 학생 역을 비롯, 억척스러운 버스차장(드라마 '화려한 시절'), 여고 짱(영화 '품행제로'), 레즈비언 태권도 사범('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등 줄곧 우악스러운 역만 맡아온 공효진이 아닌가. 그러나 MBC 드라마 '눈사람'에서 형부를 사랑하는 처제의 절절한 마음을 징그러울 만큼 잘 소화해낸 이후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여자로 등장한다.
"엽기발랄 등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를 깬 첫 작품이 '눈사람'이라면, 이번 작품은 '여자'로 가는 2단계인 셈이죠. 다음은 불치병으로 죽는 역할이 아닐까요? 하하하."
15일 첫 방송된 '상두야, 학교가자!'는 뼈대는 멜로지만, 재미를 위해 코믹한 에피소드로 엮어진다. 공효진도 초반에는 원조교제 브로커를 잡기 위해 교복 차림으로 '현장'에 잠입했다가 들통 나서 줄행랑을 치는 등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처음에는 은환이 조신한 여자인 줄만 알았는데, 집에서는 남동생과 물어뜯으며 싸우고 덜렁대고 푼수 끼까지 있더라. 내가 하면 배역 성격도 달라지나 보다"며 웃는다. 그러나 "역시 공효진"이라는 감탄을 자아낸 탄탄한 연기력은 앞으로 펼쳐질 가슴 시린 멜로 연기에도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효진의 또 다른 매력은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 '꽃미녀'와는 거리가 먼 외모에 관한 짖궂은 질문을 던지자 당찬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은 자연미인이 뜨잖아요.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은 배우로서 큰 장점이죠. 보면 볼수록 느낌이 좋은 연기자가 생명력이 길지 않을까요."
그는 당분간 드라마를 접고 영화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10월 방송하는 SBS '때려!'에 여자 복서로 캐스팅됐으나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상두야…' 섭외를 받고 선뜻 응한 것은 "영화 못지않은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대본 보고 '이거다!' 싶은 필이 꽂혀서 냅다 선택했어요. 판타지와 리얼리티가 묘하게 섞여있고, 무엇보다 참 따뜻한 작품이에요."
그는 "스태프와 연기자들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촬영장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 것은 데뷔 이후 처음"이라며 자랑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특히 상두 역을 맡은 가수 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상두 역에 거론된 분들 가운데 가장 느낌이 좋아 비를 추천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연기는 반신반의했죠. 헌데 어찌나 잘 하는지 모니터하면서 입 벌리고 봤을 정도예요." 항간에 떠돈 비와의 열애설로 화제가 옮겨가자 재치 있게 받아넘긴다. "대본 연습 하느라 자주 만났을 뿐이에요. 비나 저나 워낙 선남선녀라 남들 눈에 확 띈 게 아닐까요."
지난달 맹장 수술을 받고 불과 엿새 만에 촬영장에 복귀할 정도로 열성인 그가 이번 작품으로 연기 변신에 확실히 성공해 멜로 여주인공 자리를 꿰어찰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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