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예견됐는데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도록 방치한 것은 명백한 정부의 직무유기입니다."태풍 매미로 바닷가와 섬, 도시와 농촌 구별없이 전국이 초토화하면서 피해 주민들이 집단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의 수해지역이 피해원인을 둘러싼 책임공방에 휩싸이고 있다.
정전으로 5일째 섬 전체가 암흑천지로 변했던 경남 거제 주민들은 17일 한국전력을 상대로 집단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 소송대리인 김한주(35) 변호사는 "12일 오후 9시께부터 전기가 끊겨 6만6,000여가구 18만5,000여명에 이르는 거제시민 대부분이 16일까지 고통을 겪었다"며 "거제환경연합 등 6개 시민단체와 시민들로 구성된 원고단이 다음 주 중 가구당 하루 10만원 가량의 피해배상액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풍과 해일이 겹치면서 옛 마산항 구항·서항 매립지 일대가 침수된 마산지역에서도 "마산항 매립지 일대 침수는 부실 매립에 따른 환경재앙"이라며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 해양수산부와 마산시를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중이다.
8명이 집단 수몰된 마산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지하 3층 노래방 사고 유족들도 "서항부두에서 떠내려 온 원목이 사고주범"이라며 원목 수입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새벽 초소근무 중 해일에 휩쓸려 숨진 경북경찰청 울릉경비대 소속 정선일(22) 수경 등 전투경찰 3명의 유가족들도 "태풍이 불어닥치는데 해안서 불과 10여m 떨어진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도록 방치한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곧 소송을 제기키로 했다. 유족대표인 정 수경의 매형 임현(38·목사)씨는 "벽돌로 지어진 해안초소는 해일에 취약한 안전문제로 3년 전부터 수차례 이전 건의가 있었으나 묵살된 곳으로, 누가 그 초소에서 근무했어도 똑 같은 참변을 당했을 것"이라며 책임자 문책과 사고재발 방지대책을 촉구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태풍 피해를 입은 강원 주민들도 소송에 동참할 태세다. 강원 태백시 철암동 주민들은 이날 "두 해 연속 수해가 난 것은 철암시장 부근에 건설한 복개시설물 때문"이라며 시청을 항의 방문한데 이어 조만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지난해 태풍 루사 때 "조양강둔치 공원조성으로 하천폭이 좁아져 물난리를 겪었다"며 정선군과 강원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던 정선읍민들은 "올해도 똑 같은 원인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에 피해내용을 첨부키로 했다.
수재민 무료법률상담을 하고 있는 경남 창원지방변호사회 이원희(47) 회장은 "수재민들의 소송문의가 하루 100통이 넘게 걸려오고 있다"며 "이번 수해는 태풍과 정부기관의 과실이 겹쳐 발생한 경우가 많아 과실입증 여부가 소송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선=곽영승기자 yskwak@hk.co.kr 마산=이동렬기자 dylee@hk.co.kr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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