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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란/"세계의 문" 페르시아의 호령 들리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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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란/"세계의 문" 페르시아의 호령 들리는듯

입력
20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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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잊지못하면서도 이슬람 율법의 엄격함과 경건함이 지배하는 사회. 개방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검은 차도르가 먼저 떠오르는 나라. 이란이다. 비이슬람권의 오해와 무지로 인해 '문명과 야만이 뒤범벅된 나라'로 인식돼온 이란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오고 있다. 올해부터 테헤란-서울 직항로가 개설된 덕분이다. 쉬라즈와 이스파한. 영욕의 역사와 함께 신비함을 풍기는 이란의 대표적인 두 도시를 돌아보면서 그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다.페르시아의 영광과 상처. 페르세폴리스

BC 330년 20대의 청년 알렉산드로스가 마침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황금 1,000여개가 드리워진 왕좌에 앉았을 때, 그의 친구 테마라토스는 "그리스인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러나 곧,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휘황찬란한 황금의 궁전을 불태워 버린다.

궁전의 문에 '세계의 입구'(The Gate of All Nations)라고 적어놓고, 세계의 중심지임을 자처했던 페르세폴리스는 그렇게 허무하게 잿더미로 변했다.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알리려는 뜻에서 그랬다고 후세의 사가들은 해석하지만, 알렉산드로스로서는 오랜 숙적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과 그 놀라운 번영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2,260년 동안 흙더미 속에서 망각됐던 페르세폴리스는 1931년에서야 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에 의해 발굴됐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1시간30여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이란 남부 파르 주의 쉬라즈(Shiraz). 그곳에서 다시 한시간 정도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가자 페르세폴리스가 눈 앞에 나타났다. 라흐마트 산을 배경으로 13만5,000㎡에 이르는 페르세폴리스의 유적은 거대한 폐허로 남아있었다.

BC 518년부터 다리우스 대제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이 곳은 8대왕, 150년에 걸쳐 완성됐던 대궁전. 높이 20여m의기둥 수백개가 떠받치며 궁전, 후궁, 연회장, 보고(寶庫), 기록보존소 등으로 이뤄졌던 곳이 이제 10여개의 기둥, '세계의 문' 입구, 계단과 입구의 부조만이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 과거의 영광을 어렴풋이 전할 뿐이었다.

페르시아의 정치적 수도가 수사와 하마단이었다면, 페르세폴리스는 종교적 수도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신년 제전(3월 21일)이 이곳에서 열려 신에게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던 것. 그 신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이다. BC 6세기께 예언자 조로아스터(페르시아어로 차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이 종교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의 투쟁이란 이원론적 신앙을 기본교리로 삼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불을 모신 신전 앞에서 기도하는 왕의 모습이 담긴 부조가 그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홀에 해당하는 아파다나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부조에는 20여개국의 사신들이 페르시아 제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장면이 담겨있어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짐작케 한다. 이집트인, 인도인, 마케도니아인 등 당대 오리엔트 지역 인종들의 두발이나 의상 등의 특성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그 자체로 대단한 흥미거리이다. 또한 세계 각국의 인종이 각국의 특산물을 들고 도열한 모습에선 세계 정부로서의 위상을 가늠케할 만큼 장엄한 기운마저 내풍긴다.

라흐마트산 중턱에 조성된 암벽묘 낙쉐로스탐도 빼놓을 수 없는 곳. 수직바위 벽면을 깎아만든 이곳엔 다리우스 1세 등 페르시아 제왕 4명이 잠들어 있다. '세계의 입구'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얼굴과 독수리의 날개를 한 거대한 황소 석상도 일부가 보존돼 당대의 웅장했던 궁전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페르세폴리스는 제대로 보존된, 휘황찬란한 문화 유산이라기 보다 어쩌면 폐허의 유적지 같은 곳이다. 그 옛날 숲으로 무성했을 라흐마트 산마저 나무 하나 없는 사막으로 변해 황량함을 더한다. 그러나 이 황량함이 오히려 고대에 대한 향수를 더욱 짙게 자극한다. 회색빛의 폐허가 고대에 대한 사색과 상상의 공간을 더욱 열어주기 때문이다.

시인의 수도, 쉬라즈

쉬라즈의 제일 명소는 뭐라해도 페르세폴리스지만, 쉬라즈시 자체에도 명소가 많다. 쉬라즈는 이란 제일의 시인으로 꼽히는 사디(1209∼91)와 하페즈(1324∼1391)를 배출한, 이슬람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다. 이슬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사디와 하페즈의 무덤이 공원으로 조성돼 있어 꼭 둘러봐야할 곳. 쉬라즈는 또한 장미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쉬라즈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거대한 장미정원이 펼쳐져 있다.

/쉬라즈=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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