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현 경제상황을 '준(準) 비상사태'로 선언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16일 회장단회의에서 현 국면을 "2차 오일쇼크이후 극심한 국내 정치적 혼란이 겹쳤던 1980년, 그리고 환란직후였던 98년을 제외하면 경제개발이 시작된 62년이래 최악"으로 규정했다. 경기순환 과정에서 반복되는 통상적 경기침체를 넘어서는, 사실상의 위기·비상상황이라는 인식이다.올해 우리 경제의 예상 성장률은 2∼3%선.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이날 1%대 전망치까지 내놓았다. 잠재성장률(5%대)의 '반타작' 유지도 버거운 낙제 성장인 셈이다. 투자·소비부진은 말할 것도 없고, 급증하는 청년실업은 성장동력 자체를 마모시키고 있으며 태풍 매미의 충격은 국내총생산(GDP) 감소 차원을 넘어 산업현장에 남아 있던 최소한의 활력마저 앗아간 상황이다.
회장단은 이날 모임에서 현재의 경제난이 무엇보다 정부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는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수들은 "지금은 정부와 정당, 기업이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며, 특히 대처 영국 전 총리나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만금간척사업 고속철도 같은 국책사업에서 나타난 사회갈등, 곳곳에서 분출되는 집단 이기주의,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 리더십의 부재 등이 어울어지면서 기업투자와 민간소비가 위축됐고 결국 경제난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비상사태에 대한 처방도 통상적 대응으론 안된다는 지적이다. 당장은 추가적 금리인하와 2차 추경편성 등 강도 높은 거시수단을 통한 경기부양이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론 사회적 갈등구조를 근원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는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 연장과 정부의 노사대책 등이 기업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날 전경련이 피력한 경제상황 인식과 처방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도 있다. 경제난을 과장함으로써 재계의사에 반하는 개혁·노사정책을 물타기하려는 '또 다른 집단이기주의'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회복의 실질적 열쇠를 쥔 재계로부터 '이대로는 투자할 수 없다'는 분명한 의사가 확인된 만큼, 얼어붙은 경제심리를 녹이기 위한 특단의 종합대책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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