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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농촌위기 원인은 농정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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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농촌위기 원인은 농정실패

입력
20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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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선언문 채택에 실패하고 결렬되었다. 협상 결렬은 표면적으로 투자 및 경쟁정책 등에 관한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이견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면에는 농업분야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 수출국과 수입국간의 의견 차이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흥미로운 것은 협상 결렬을 전후한 국내 보수언론들의 태도이다. 비록 채택에는 실패하였지만 각료선언문 초안은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은 농업개방안을 담고 있었다. 이에 언론들은 앞다투어 '농업개방 초강력 태풍 온다' '농업개방 직격탄 맞은 한국' 등 협상 타결이 한국농업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으로 보도하였다. 그런데 막상 협상이 결렬되자 언론들은 정부측 협상대표자 혹은 관변 연구기관 전문가의 입을 빌려 한결같이 협상 결렬이 우리 나라의 공산품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협상은 결렬되었지만 농업개방은 여전히 불가피하다고 못박고 있다.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를 종합해보면, WTO 각료회의가 농업분야에는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 뻔하지만 공산품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였는데 결렬되어 안타깝다는 것이다.

농업분야를 희생하더라도 공산품 수출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보수언론 뿐 아니라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다. 정부는 이번 각료회의에서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자유무역을 주장하였고, 농촌의 어려운 실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자간 협상을 통한 농산물시장 개방과 실익도 불투명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고 있지 않은가.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참여정부와 보수언론이 희한하게도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론에서는 '코드'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칸쿤 회의의 최대 비극은 한농연 전 회장 이경해씨의 자살이다. 이경해씨의 죽음은 가뜩이나 흉흉한 농촌 민심에 불을 질러 대규모 시위가 예고되고 있다. 무엇이 농민들을 자살과 시위로 내모는가. 이경해씨는 WTO의 개방압력에 대해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그리고 협상에 반대하기 위해 100여명의 우리 농민들이 이역만리 멕시코까지 갔다. 그것은 농업개방이 가져올 결과를 잘 아는 농민들로서는 생존권 차원의 투쟁이었다. 분명 WTO 농업협상은 우리 농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우리 농업과 농촌을 위기로 내몬 것은 해외에서의 개방압력만이 아니다. 국제적인 개방 압력은 우리 농민에게만 가해지는 것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유독 우리 농민만 형편이 나날이 나빠지고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농정실패 때문이다.

우리 농촌이 피폐해진 원인은 농산물시장 개방압력 때문이 아니라, 농업·농촌의 희생을 전제로 한 극단적인 수출제일주의와 성장제일주의 정책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책 기조를 전환하여 농업·농촌을 살릴 길을 모색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외국의 개방압력에 돌리며 국제경쟁력만이 우리 농업이 살 길인 양 경쟁력지상주의를 표방하고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였다. 그러나 농업구조개선 정책은 경쟁력 제고에 실패하고 오히려 농민들에게 헤어나기 어려운 빚만 안겨주었다. 이에 보수언론은 농업에 대한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냐, 경쟁력 없는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산품 수출을 희생시키는 것은 소탐대실이 아니냐고 농업포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WTO 농업개방 압력, 정부의 농정 실패, 보수언론의 왜곡된 농업관이 우리 농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농업·농촌문제를 농업의 국제경쟁력 문제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농업과 농촌의 발전 없이는 국가의 건전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고, 농촌지역의 개발과 복지향상, 농가소득 증대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하여야 한다. 삼가 고 이경해씨의 명복을 빈다.

박 진 도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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