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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너무 사랑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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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너무 사랑한 죄

입력
20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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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폴 오스터가 편집한 '나는 내 아버지가 신인 줄 알았다'는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KKK단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한 1920년대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흑인과 유대인이라고는 세 가족밖에는 없는 마을이어서 이 마을의 KKK단은 가톨릭 신도들을 몰아내는 일에 주력했다. 협박 전화를 일삼고 여자들에게는 나쁜 소문을 만들어 괴롭혔다.사람들로 붐비는 어느 토요일에 이들은 예의 그 흰옷과 망토, 두건을 쓰고 마을에서 퍼레이드를 벌였다. 나름대로 한껏 폼을 잡고 장엄하게 행진하려는 참에 갑자기 점박이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개는 꼬리를 흔들며 두건을 쓴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그의 뒤를 졸졸 따라붙었다. 누가 봐도 주인이라고밖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그 사내는 발길질을 하며 개를 쫓았다. "이놈의 개가. 집에 가 있어. 라스칼." 구경꾼 모두가 그 개와 주인을 알고 있었다. 두건을 쓴 남자는 다시 진지하게 행진을 계속하려 했지만 구경꾼 사이에선 이미 폭소가 터졌고 KKK단의 그 인위적인 신비함도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후로 마을에선 KKK단의 흰 두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주인의 정체를 폭로한 라스칼은 집에 묶여 지내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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