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연쇄살인의 유력한 용의자로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백광호가 지목된다. 신원확보에 나선 형사들은 읍내 오락실 구석에서 그를 찾아냈다. '올림픽' 게임에 빠져있는 백광호는 30㎝ 쇠자를 버튼 위에 걸쳐놓고 연신 튕겨대고 있었다.코나미의 '하이퍼스포츠'(1984)는 1980년대의 시대상을 함축한 이 영화에서 당시의 추억을 현실로 되돌려주는 소품이다. 올림픽이라는 별명은 수영, 사격, 역도, 마루운동, 멀리뛰기 등 다양한 종목에서 금메달을 겨루는 게임 내용에서 따왔다. 버튼 3개만으로 플레이 가능한 단순한 조작 방식이 특징. 오직 버튼을 누르는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타이밍만 갖춰지면 10관왕도 가능하다. 덕분에 조이스틱 움직임이 서툰 어린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어 초등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대단했다.
버튼 누르는 속도가 승리의 관건으로, 다양한 비책이 등장했다. 게임기 걸상에서 반쯤 일어나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눈을 화면 아래의 '파워 게이지'에 고정하는 것은 공통된 준비 자세.
첫번째 유형은 두 손을 쫙 펴고 새끼손가락 끝을 버튼에 겨냥, 양손으로 번갈아 타격하는 방법이다. 비교적 힘이 덜 드는 방법이지만 버튼을 헛치는 수가 많고, 힘 조절이 안돼 한참 두드리고 나면 손가락이 아프다.
두번째 유형은 두 손 검지손가락을 모아 번갈아 연타하는 스타일.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고 속도도 빠르지만 손목 근육이 쉬 피로해진다. 오른쪽 손가락 3∼4개를 이용해 피아노 치듯 '드르륵' 긁는 방법도 있다. '힘'의 면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속도로는 앞의 두 방법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영화 속의 백광호는 일명 '자치기'라는 수법을 쓴다. 휘어졌던 쇠자가 펴지면서 아래위로 빠르게 떨리는 현상을 이용했다. 사람 손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무적의 비기(秘器)로 통했다. 다만 떨리는 힘이 너무 강해 버튼을 고장내는 수가 잦았으므로 사용전에는 오락실 주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 게임은 인터넷 에뮬랜드(www.emulland.net)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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