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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에 태풍까지 남해안 양식장 '빈사' /물고기대신 쓰레기·기름띠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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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에 태풍까지 남해안 양식장 '빈사' /물고기대신 쓰레기·기름띠만 가득

입력
20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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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뒤집어진 기라예. 이기 우리 논이고 밭이고 목심인데, 이리 되모 몬삽니더."16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 곤리도에서 만난 한 어민은 적조에 이어 닥친 태풍과 기름띠 등 '3중고'에 내몰린 양식어민들의 고통을 '살 수 없는 지경'이라고 잘라 말했다.

마을은 도톰하게 살이 오른 힘센 돌돔들이 펄떡거리던 황금어장과 선착장을 가득 메운 활어 운반차량은 온데간데없고 어민들의 한숨과 무심한 파도소리만 가득했다. 태풍은 마을 주민 65명이 8.5㏊의 가두리양식장에서 애지중지 키워 놓은 돌돔, 우럭, 농어 등 400여만마리를 통째로 삼키고, 그 자리에 쓰레기 더미와 기름띠만 남겨놓았다. 김종윤(63)씨는 "이러다가는 (물)고기가 금덩이 보다 비싸게 될 것"이라며 "적조에다 태풍까지 겹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한숨지었다.

이번 태풍에 통영시 91개소 240㏊의 가두리 양식장 가운데 80% 가량인 71개소 191㏊가 결딴났고, 굴과 우렁쉥이 홍합 양식장도 전체 9,096㏊중 80% 가량이 쓸려 내려가 정확한 피해액 산정 조차 불가능한 처지다. 16일 현재 시가 잠정 집계한 양식장 피해만도 550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나마 욕지·한산도 일대에서 태풍에 살아남은 20% 가량의 가두리 양식장도 그물이 터지면서 물고기가 달아났고, 예년과 달리 태풍이 휩쓸고 간 바다에도 적조 띠가 여전히 세력을 뻗치고 있어 어민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정은 거제·여수 등도 예외가 아니어서 쪽빛 바다가 황금 양식어장임을 과시하듯 점점이 떠 있던 하얀 색 부이는 사라지고 태풍에 산산조각난 그물과 도구 잔해들만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박춘길(60)씨는 4㏊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출하를 목전에 둔 참돔과 우럭, 농어 등 140여만마리가 강풍을 동반한 높은 파도에 모두 유실돼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했다. 박씨는 "지난해에는 사상 최악의 적조가 가슴에 멍을 남기더니 올해는 태풍이라니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며 허탈해 했다. 위로한답시고, '다들 그렇더라'며 한 마디 건네자 그는 "남해안 어장들이 모조리 이 지경이니 올 가을에는 도시에서도 횟감 구경하기 힘들 것"이라며 쓰게 웃었다.

뱃길을 돌아 닿은 동부면 가배리, 남부면 저구리, 둔덕면 술력리 일대 역시 격렬한 해전(海戰) 직후의 어수선함 만이 감돌 뿐 풍성한 가을 어촌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제시에서는 87㏊의 양식장 중 79.3%인 69㏊가 피해를 입어 560여억원의 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통영·거제=이동렬기자 dylee@hk.co.kr 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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