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이자 번영의 기수로 평가되는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16일 80세 생일을 맞았다.1990년 32년간의 총리직을 마감한 이후 내각의 선임장관으로서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그는 80세 고령에도 왕성한 국정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생일을 이틀 앞둔 14일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장남 리셴룽(李顯龍) 부총리가 총리에 오른다 해도 내각에서 봉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5년 리 부총리가 고촉동(吳作棟) 현 총리로부터 총리직을 계승할 경우 그가 은퇴할 것이란 정가의 추측을 일축한 것이다.
리셴룽(51) 부총리는 부친이 총리로 재직하던 84년 의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주로 경제분야 각료를 맡으며 20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이를 놓고 싱가포르에 '리콴유 왕조'가 들어선다는 해외의 비판이 있었지만 리 전 총리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내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능력이 열쇠"라고 말했다.
그가 장기집권과 부자 권력세습이란 지적 속에서도 국민적 지지를 잃지 않는 비결은 권위주의와 경제적 효율성을 조화시킨 데 있다. 그는 부패와 독선으로 흐르기 쉬운 권력의 속성을 경계하면서 안정과 경제발전에 지도력을 집중시켰다. 그가 총리에 취임한 이후 작년까지 싱가포르의 1인 당 국내총생산(GDP)은 427달러에서 2만849 달러로 늘어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로 자리잡았다.
유교적 철학에 바탕을 둔 그의 '아시아적 권위주의'는 민주주의의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한다. 그의 이런 견해는 90년대 말, 서구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주장한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과 미국 국제문제전문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스'에서 지상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는 권위주의 색채에도 불구하고 법적·제도적 장치를 정교하게 구축함으로써 인적통치의 한계를 극복했다. 특히 정부 관리의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서는 자신의 솔선수범과 제도적 시스템을 결합시켰다.
부패행위조사국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해 공직자 부정을 엄단하는 한편, 공직자 급여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인상해 부패를 구조적으로 봉쇄했다. 싱가포르가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각국의 부패인지지수(CPI)에서 세계 5위, 아시아 1위 청렴국으로 평가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구 340만 명의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덩치를 훨씬 능가하는 외교력을 발휘하는 데는 그의 정치력과 카리스마가 큰 몫을 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결성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는 또 중국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수시로 대만을 방문해 경제적 실리를 얻어낸다.
그는 19세기 싱가포르로 이주한 부유한 중국계 가문에서 태어났다. 영국 캠브리지대 법대 유학시절에는 수석졸업을 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는 그를 두고 "수에즈 운하 동쪽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의 철인정치(哲人政治)적 발걸음이 노령에도 이어질지 관심이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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