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한국오픈'이라는 골프대회가 열리곤 한다. 골프계는 이 대회를 국내 최고 권위 대회로 떠 받들며 대회 성공을 위해 지성을 쏟는다. 그런 한국오픈이 올해(10월9∼12일)에는 '깜짝쇼'를 준비했다. 미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선수인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를 초청, 성대결을 벌이는가 하면 연예인골프대회에서 우승한 개그맨 최홍림씨를 스폰서 초청 자격으로 출전시키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는 FnC코오롱측이 대회흥행을 위해 내건 마케팅 전략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골프인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다른 대회라면 몰라도 한국오픈이 이런 지경까지 망가져야 하는 지에 대한 자괴감이다.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올해 3차례나 골프 성대결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삼류대회에서였다. 46년 역사의 한국오픈은 고색창연한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처럼 국가의 이름을 내건 내셔널타이틀 대회다. 이들 대회는 그에 걸맞는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고 자격을 갖춘 선수만 출전시키고 있다. 이들 대회처럼 나름의 전통과 권위를 지켜왔던 한국오픈이 이번에는 국내 투어 프로선수 70명과 외국의 내로라하는 프로선수에게만 출전 자격을 부여하는 '묵계'를 깨고 흥행을 위해 발가벗은 것이다.
그렇다고 협회측과 스폰서기업에 마냥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경기 침체의 긴 터널 속에서 대회 스폰서십을 포기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와중에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대회를 계속 개최하고 성공시키려는 의지와 열성에는 속으로 박수를 보내고도 싶다. 그래도 안타까움은 남는다. 대회 성공을 위한 이벤트화는 일면 필요하지만 그 곳에도 최소한의 금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자존심과 전통을 완전히 버린 희극화에는 결국 팬이 등을 돌릴 것이라는 걱정은 골프대회만의 얘기는 아닐 것 같다.
김병주 체육부 기자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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