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이혼 판결이 나왔다. 서울가정법원은 최근 O(36·공무원)씨가 부인 J(32·간호사)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에서 "J씨가 자녀를 친정에서 양육할 것을 고집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남편의 소망을 저버렸고, 다툼이 있을 때마다 친정으로 가버려 가정파탄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면서 J씨에게 이혼과 함께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J씨는 1998년 결혼하여 연년생의 아들 두 명을 낳았는데,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직장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육아를 도왔는데, 허리 통증을 호소해 친정에서 키울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부부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서울 가정법원의 판결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먼저 보육시설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맞벌이 부부들은 친족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기왕에 친족이라면 시부모 보다 친정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심리적으로 덜 부담스럽다. 친정 부모에게 자녀를 맡기는 여성들은 누구나 늘 죄송한 마음이고 그래서 정신적인 소모가 크다.
J씨는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이 보고 싶고 직장생활이 힘들기도 해서 친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에 대해 남편은 장모에게 감사하기는커녕 각서를 요구하여 친정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남편은 출퇴근을 하면서 자녀를 데리고 다닌다든가 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법원은 친정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남편이 어떠한 협력과 지원을 했나 따져봤는지 묻고 싶다.
J씨가 자녀 양육을 친정에서 고집했다는 이유가 결혼 파탄의 주된 책임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친정 부모는 손자들을 키워서 무슨 득을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다. J씨가 왜 친정에 아이 양육을 맡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재판부가 헤아렸는지 묻고 싶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길만한 시설이 태부족하고 육아 휴직제가 있지만 기간이 1년밖에 안되고 휴직기간의 임금이 30만원에 불과해 사용하기 어렵다.
이번 이혼사건 판결은 자녀양육의 어려움으로 출산을 기피하는 요즈음 세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녀양육은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해결할 과제임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 같아 유감스럽다.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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