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방사선과 병원은 9,600㎞ 떨어진 곳에서 근무하는 미국 의사로부터 컴퓨터 단층촬영 시술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현지에서 이 병원을 운영하는 담당 의사 역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이 분야 최고의 전문의이다. 이 시술을 받는 환자는 매일 40여명에 이른다.이 같은 시스템의 가장 큰 이점은 환자들이 부담할 치료비가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서비스의 질은 미국과 별차이 없지만 저렴한 인건비와 임대료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최근 저비용 국가를 찾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서비스 아웃소싱의 좋은 사례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980∼90년대 제조업이 값싼 인건비를 찾아 개발도상국으로 퍼져나갔던 것 처럼 첨단 서비스업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초일류 기업의 아웃소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보도했다. 선진국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피하자는 뜻도 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의 우수한 인력과 인프라를 이용,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이다. 컴퓨터, 인터넷 등 통신매체의 발달이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이다.
의료부문 뿐 아니라 주식 애널리스트, 영화 애니메이션, 금융, 기계 유지·보수 등의 분야에서도 아웃소싱이 확산되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대에서 건축학을 가르치던 한 베트남인 교수는 최근 영국 회사의 용역을 맡아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용 그림·도안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받는 연봉은 6,000달러. 베트남의 1인당 평균 소득 400달러와 비교하면 엄청난 돈이지만 영국의 근로자들에게는 껌값이다.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서는 미국에서 들어오는 빈여객기를 자주 볼 수 있다. 대부분 기체의 보수·점검을 위해 들어오는 비행기이다. 싱가포르의 우수하면서 저렴한 엔지니어가 갖는 가격 경쟁력에 끌려 태평양을 건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서비스 아웃소싱의 '블랙 홀'은 깨어나는 대국 인도이다. 정보통신기술(IT)과 영화산업의 메카인 인도는 전세계 고소득 서비스 업종이 입주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라이벌인 중국이 아직 경공업 분야에 치우쳐 있어 부가가치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델리에 있는 영화 제작사인 'Moving Pictures India'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등의 영화사에 납품할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특수효과를 제작하고 있다. 용역 일 뿐 아니라 자사 인력을 서방 방송국, 영화사에 파견하기도 한다. 이 회사 라메시 샤르마 회장은 "네덜란드에서 10만 달러 짜리 다큐멘터리를 우리는 2만 5,000달러면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질정보 서비스 업체인 RMSI는 지도와 인공사진을 분석하는 틈새 시장의 선두주자이다. 이 회사는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영국 일본 업체로부터 납품을 독점하고 있다.
저비용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의료·보건 분야이다. 뉴델리에 있는 한 심장전문 센터는 외국인 환자들로 항상 붐빈다. 항공료를 포함한 평균 수술 비용은 7,000달러. 영국의 4분의 1 가격이다. 수술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지난해 이 병원이 기록한 4,000건 이상의 수술 실적은 전세계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최고기록이다. 사망률은 0.8%로 국제기준을 웃돌았다.
다른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세계적인 금융·미디어 그룹인 영국의 로이터는 금융정보를 분석할 새 데이터 베이스를 인도에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과 미국에서 1,200여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것도 감수할 방침이다.
선진국에서는 초비상이 걸렸다. 이 같은 서비스 산업의 이동이 제조업이 그랬던 것처럼 자국 산업을 공동화하고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미국 뉴저지주는 공공부문 도급계약을 인도와 같은 역외국가 업체와 체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과거 제조업에서 심각한 고용손실을 겪었던 유럽은 인도의 가격경쟁력이 노동력 착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서비스 아웃소싱이 국제적 무역분쟁을 불러올 것을 우려한 인도는 마드라스 하이데라바드 뉴델리 뭄바이 등 주요 전진기지에 서방 기자들이 접근하는 것까지 막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 라운드에서 인도 정부는 개도국으로서 일관되게 주장했던 보호무역 정책과는 달리 서비스업에서 만큼은 자유무역을 강조해 다른 국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 간의 신경전과는 별개로 민간기업들은 이 같은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이사는 "경쟁사들이 아웃소싱을 신앙처럼 믿고 있다"며 "그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군대도 빌려쓴다
핵심 분야를 제외한 기업의 거의 모든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는 아웃소싱은 1990년대 말부터 본격 시작됐다.
특히 서비스 업종의 아웃소싱 추세가 일반화하면서 이를 중개하는 전문업체들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장업종으로 떠올랐다.
분야는 전통적으로 생산, 정보처리·시스템 개발, 기기점점·보수, 연구개발, 복지 등의 순이었지만 최근에는 매니지먼트와 고객관계관리(CRM)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슬림화하려는 기업의 생존노력이 이들 아웃소싱 전문업체의 활동공간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IT) 업체를 위한 매니지먼트 서비스 분야는 2001년 초 미국에서만 100여개 업체가 성업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미국의 IT전략 컨설팅업체인 메타그룹은 이 분야의 미국 시장규모가 2005년이면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업체들은 아웃소싱을 원하는 기업과 서비스를 제공할 기업 사이의 중개기능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전문인력까지 보유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의 적극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전문업체들은 다국적기업들의 새로운 전략시장인 중국과 인도에 활동거점을 구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시장 근접성과 함께 저렴한 현지 고급인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첸나이에서 활동중인 업체인 미국의 '오피스 타이거'가 대표적이다. 오피스 타이거는 유에스 뱅크 등 세계 12대 투자은행 중 6개를 고객으로 두고 있어 미국 월가의 실질적 싱크탱크라고도 불리고 있다. 박사학위자 75명, 석사학위자 300명 등 모두 1,000 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이 회사는 고객사들을 위한 IT 시스템 매니지먼트와 투자정보 분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현재 2,000만 달러인 매출을 3년 안에 1억 달러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전쟁개념의 변화에 따라 미 국방부가 전술자원의 외부조달 비율을 높이면서 군사전문 아웃소싱 업체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전문기술에 대한 자문과 정규군이 수행하기 어려운 민감한 임무, 피점령국 군대의 훈련 등의 임무를 맡는 이들 업체는 미군의 활동에 필수적인 존재가 됐다.
한 때 '죽음의 상인' 취급을 받던 딘코프, 큐빅, ITT, MPRI 등 주요 업체의 주가는 지난 5년간 3배나 뛰어 올랐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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