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입법부, 행정부뿐 아니라 사법부의 몫이기도 합니다."형사사건 피고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사회기부를 유도, 지금까지 1억5,700여만원을 50여곳의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토록 한 판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6월부터 피고인에게 불법적으로 취한 부당이익의 사회환원을 권유하고 있는 수원지법 성남지원 은 택(41·사진) 판사는 자신의 작은 시도를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하는 사법부의 의무'에서 찾았다. '징벌'이라는 사법부의 기본 역할 외에 불법으로 얻은 부(富)를 사회에 환원시키려는 조그마한 노력이다.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피고인들이 불법 이득액을 고스란히 소유하는 것은 정의 관념에 반한다"는 그의 설명이 이러한 취지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기부권유가 판결에 법리적인 부담을 주지 않도록 대상을 신중히 선택하고 있다. 은 판사는 "자칫 이중처벌이나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을 낳을 수 있어 집행유예 대상자 중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기가 적합하지 않은 경우 등에 한해 권유한다"고 원칙을 밝혔다. 대부분 초범 내지는 동종 전과가 없고 유명상표를 위조해 판매하거나 그린벨트 지역에 창고, 공장을 짓는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득을 취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하며, 기부권유를 받아들이면 보호관찰형 등을 면제해 주고 있다.
은 판사는 "기부를 문제 삼아 양형이 부당하다고 검찰이 항소한 사례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피고인이나 그 가족들로부터는 불우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좋은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신문기자를 하다 뒤늦게 법조계에 입문한 '늦깎이' 판사인 그는 선뜻 기부권유에 응하는 피고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틈나는 대로 노숙자시설을 돕고 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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