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어느 여름날. "따르릉…" 그날 따라 전화기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귀에 익은 목소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선배였다. 반갑게 인사말을 건넸는데 느닷없이 "김 대리! 우리 함께 일해 보자. 신한은행으로 와라"고 하는 게 아닌가.한번쯤 "왜 옮겼죠?"라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거꾸로 제안을 받고 보니,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서둘러 대화를 끊어야만 했다. 직장을 옮긴다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된 요즘에야 별 일 아니겠지만 당시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다시 말해, 안정적이고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정상적인 커리어 패스(Career Path)였지, 직장을 옮긴다는 것은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탈출구이거나 혹은 경제적인 문제로 퇴직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극한 상황에서 꺼내 드는 카드였던 것이다.
더욱이 나는 한번 조직에 들어왔으면 거기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또 당시 조직 내 최연소 대리 승진자로서 은행의 핵심업무를 담당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굳이 의협의 도에 비유하자면, 당시 내 심정은 유비의 관우와 장비였고, 손책과 손권의 주유였으며, 조조의 하후돈과 조홍이었다.
그러나 그 선배의 권유가 계속되고 더불어 평소 좋아하던 또 다른 선배 두 분이 움직이자 인간적 고민은 깊어만 갔다. 사실 아무리 매력적인 제안이라 하더라도 인적 네트워크 등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옛날 양아버지 정원을 버리고 동탁을 섬긴 여포의 어이없는 변심이 될지, 아니면 공손찬을 떠나 큰 그릇 유비를 좇은 조자룡의 혜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아내나 친구들에게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혼자만의 속앓이를 1주일 이상 해오던 어느날 새벽. 나는 정말 갑작스럽게 결론을 얻게 되었다. "왜 고민하는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자체가 이미 마음이 옮겨간 증거 아닌가? 꿈을 안고 인생을 멋지게 그려보자." 결심이 서자 나는 다음날 바로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좋은 사람들과 '정말 은행다운 은행,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은행을 한번 만들어 보자'라는 꿈과 도전정신이 넘칠 때였다.
지금 이 은행에 승선한 지도 벌써 2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결코 후회는 없다. 그때의 전화 한 통화는 내게 '한국 금융사를 새로 쓰겠다'는 꿈과 열정을 새롭게 준 계기였기 때문이다.
요즘 인사담당 임원인 나에게 은행 취업을 문의해 오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는 21년 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학점, 자격증, 외국어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패기, 열정이 있다면 힘차게 도전해 보라. 어떤 분야이건 당신의 선택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 상 대 신한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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