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고전적인 의미에서 해석하자면, 붓 돌아가는 대로 창작하는 ‘기발한 발상’의 작품이랄 수 있다. 현실과 동떨어지는 배경 설정도 만화에서는 용서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어린이 만화에는 언제나 황당하고 생뚱스러운 주제가 등장한다.우리 만화 가운데 만화라는 매체의 표현적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만화다운 만화’를 개척했던 작가로는 김 삼(본명 이정래ㆍ62)을 꼽을 만하다. 1976년 어린이잡지 ‘소년생활’에 연재를 시작한 선생의 ‘검둥이 강가딘’은 재미있는 어린이 만화의 백미에 해당한다.
‘검둥이 강가딘’은 시커멓게 생긴 개(犬)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똥개’라고 불리는 개다. 외국산 고급혈통 개들과 달리 주인집 식구가 먹다 남은 잔반이나 처리하고 하루종일 목줄에 묶여 사는 처지다. 그러나 강가딘은 외형만 개의 모습일 뿐, 주인집 아들의 피아노를 ‘체르니 30번’까지 단숨에 연주하는 등 사람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녔다.
강가딘은 “내 어쩌다가 개로 태어나 이런 꼴로 사는고? 인간으로 태어났더라면 벌써 교수나 판검사가 됐을 텐데…”라며 신세한탄을 한다.
이 강가딘이 주인집 식구가 여름휴가를 떠나자 이웃집에 사는 예쁜 푸들 ‘애인’을 불러 불고기 파티를 벌이는 등 만화는 초반부터 ‘기상천외’로 치닫는다.
만화 강가딘의 이야기는 아무도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제멋대로 튀는 모습이다. 비행접시를 타고 온 우주소년을 만나는가 하면, 어리고 착한 귀신을 괴롭히는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등 점입가경이다. 강가딘은 가깝게는 우리 이웃의 평화를, 멀게는 인류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이며 나아가서는 우주와 영계를 넘나드는 정의의 용사로도 묘사된다.
한 마리의 검둥개가 펼치는 지극히 만화다운 무용담이다. 그러나 영웅호걸 형 주인공이라 해서 결코 위엄을 부리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그린 듯한 만화 체 그림에다 후닥닥 해치운 듯한 그림꼴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그 어떤 만화도 따라갈 수 없는 판타지를 담고있다.
강가딘 만화를 집어 드는 순간 코흘리개 독자들은 감전이라도 된 듯 빠져들었다. 만화의 힘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의 30ㆍ40대 장년층이 개구쟁이였던 시절, 만화 강가딘은 그야말로 유니크한 ‘환상과 꿈’의 세계였다.
김삼 선생의 만화는 창작내용으로 보아서 크게 2기로 나눌 수 있다. ‘강가딘’을 비롯, ‘소년 007’(1966~1980) ‘칠삭동이’(1982~1995)등 어린이만화 창작시기와 1987년 이후 ‘주간만화’ 연재를 시작으로 새롭게 선보인 진한 색깔의 성인만화 창작기가 그것이다.
그의 성인만화 역시 게슴츠레한 눈매의 여성 캐릭터를 앞세워 만화적 위트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젊은 여성의 허벅지가 그림 칸을 가득 메우는 ‘만화적 퇴폐’로 넘실거렸다. 그러나 그 선정성은 어른들이 건강하게 즐길만한 적정선의 퇴폐였다.
우리 만화사에서 김삼 선생은, 만화의 고유한 상상력과 위트, 그리고 재미를 제대로 살릴 줄 알았던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손상익ㆍ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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